세풍-대구병? 대구힘!

입력 2006-03-23 10:47:51

지난해 대구의 순유출 인구는 약 2만5천 명으로, 10년 내 최고치였다. 대구시 인구는 2003년 254만 명을 정점으로, 2004년 253만9천 명, 2005년 252만6천 명으로 줄어드는 '탈(脫) 대구' 현상을 보였다. 사실 대구의 현주소는 별로 밝지 않다. 시장의 불명예 퇴진과 위천 국가공단 조성 실패, 연이은 참사와 꼴찌권 경제 지표,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이 엉켜 대구에 대한 호감은 땅에 떨어졌고,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비판적 엘리트들은 한마디로 다양성이 부족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대구 병(病)'이 깊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모 월간지는 '대구가 성장을 멈춘 절망의 도시'라고 단정지은 것일까? 그 잡지는 "대구가 순환'경쟁'상호 비판이 없는 동종 교배의 도시여서 갈수록 열등인자만 나타난다."고 못 박았다. 과연 대구는 일어설 힘도, 미래 비전도 갖지 못한 패거리 집단인가. 가치관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면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대구 사람이 다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구석이 없진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어쩌면 손해를 보더라도 가야할 길을 '뚜벅뚜벅' 가는 스타일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은 까닭은 아닐까.

이런 현상은 대구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대구 일대는 우리나라의 사상사'정신사를 이끈 영남학파의 중심지이자, 사림의 후예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래서 사리사욕보다 대의명분과 정의감을 중요시하는 기풍이 강하다. 각 분야의 실력자들은 많지만, 잘 나서지 않기에 대부분 가려져 있다. 웬만한 인물이 사회 전면에 나서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 데서 연유한다. 대구를 학문의 수도로 만들자는 움직임 또한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문(文) 사(史) 철(哲)의 수도로서 대구보다 더 적당한 곳을 찾아내기란 힘들다.

최근 지역민과 기업들은 문화 마케팅에 대한 관심을 부쩍 늘리고 있다. 좀체 성공하기 어렵다는 뮤지컬이 대구에서 연속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대구프레뮤지컬페스티벌이 끝나면 오는 4월 12일부터 23일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정통파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그리스'가 대구 시민을 찾는다. 그만큼 뮤지컬 선호층이 두터우며, 동시에 대구가 21세기형 문화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 대구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채무 변제 방식인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이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대구상공회의소 상공위원 기업들을 포함한 역내 기업들이 뜻을 모은다면 국채보상의 취지를 살려 빚에 허덕이는 국가들을 돕는 금융센터를 건립하여 제3세계 금융허브로 변신할 수도 있다. 이미 지역 기업들이 지난 1967년 출자하여 창립한 대구은행은 지역민들의 성원 아래 최고의 지방 은행으로 자리 잡지 않았는가.

거리 문화도 우수하다. 청소년들의 해방공간인 반월당~동성로까지는 서울 명동이나 미국 보스턴이 자랑하는 유명 관광지 '매그니피슨트 마일'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확보된 동성로 쇼핑 루트에 열린 휴식 공간과 맛집 그리고 문화 공간만 보탠다면, 손색없는 관광 명소이다. 전국에서 벤치마킹해 간 담장 허물기를 되살리고, 청계천 복원의 모델이 된 신천에 생태 공간을 추가 조성하여 친환경성을 높이고, 첨단 루미나리에로 '밤 문화'(night life)를 활성화시킨다면 대구의 분위기는 한결 밝아지고 마음도 넉넉해질 것이다. 도심 빌딩에는 외국처럼 야외 조명 밝히기도 시도해 보자.

실력 있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데다, 사통팔달 뻗어 있는 시내 교통망과 KTX'고속도로 신설로 서울'부산'포항까지의 접근성도 좋아져 물류 비용이 대폭 줄게 됐다. 이제 대구는 '잃어버린 10년'을 잊고, 다시 날아오를 때다. 단, 과거처럼 단점만 지적해 내는 '제로섬 방식'이 아니라 숨겨진 장점을 찾아 내 강화해 주는 '플러스섬 방식'으로 말이다. '대구 병'을 던져 버리고, 미처 알지 못한 장점으로 꽉 찬 '대구의 속힘'을 발휘하면 인재와 기업이 자연히 몰려온다. 변화는 작은 데서 시작된다.

최미화 논설위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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