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교도소 성추행 사건이 남긴 교훈

입력 2006-03-21 09:11:53

교도관의 성추행으로 자살을 하려했던 여성재소자가 끝내 살아나지 못하고 숨졌다. 꼭 살아나서 개인의 억울함도 풀고 여성재소자의 인권도 보호받는 날을 직접 보아야 하는데 너무나 안타깝다.

여성운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특히 전국적인 여성단체의 대표로서 이 사건을 접하고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생각도 못한 자신이 참 원망스러웠다.

성폭력은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이다. 지금은 변하고 있긴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교도소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성재소자에 대한 성폭력 우려와 대책이 그간의 여성운동에서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여성재소자에 대한 교도관의 성추행과 피해 여성의 죽음이 우리 여성운동이나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교정업무에 땀을 바치고 있는 대다수 교정공무원들의 책임도 아니다.

관리책임이 있는 교정당국과 아직도 구시대적 사고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체 교정공무원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일부 교정 공무원들에게 제일 큰 책임이 있고 국민의 대표로서 밑바닥의 소리까지 반영해서 국정을 바로 잡아야할 정치인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여성운동이 여성들 중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컸더라면 여성운동은 이러한 여성들 중의 하나인 여성재소자들의 인권문제를 미리 제기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최소한 목숨을 잃는데 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생기기전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못했던 문제가 비단 여성재소자 인권문제만이 아니다. 군산 대명동에서 성매매피해여성들이 화재로 숨지기 전에는 성매매피해여성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안에 기지촌여성들을 중심으로 성매매피해여성들을 구조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새움터라는 회원단체가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회원단체들이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못했다.

노인의 다수가 여성들이고 질병과 외로움과 빈곤으로 많은 여성노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됨으로 여성노인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뻔한데도 대부분의 여성단체는 아직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70%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직접적인 힘을 보태는 여성단체는 너무나 적다. 더구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만큼이나 열악하고 때론 더 힘들기도 한 영세여성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단체는 없고 이제 그 어려움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수준이다.

여성운동이 원래의 목적대로 이 땅에 사는 모든 여성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상의 주인으로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더 어렵게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깊은 애정을 가져야 한다. 관심을 가진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것은 여성운동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운동에 함께 하는 것이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도처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여성단체 중에는 반성폭력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많은 편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도 많지만 알고도 여성단체의 적은 역량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다.

자신의 생활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여성,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한 여성들,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는 여성들이 여성운동에 참여해서 스스로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부조리와 부정의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여성, 어려운 이웃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여성, 여성 모두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여성, 마음이 따뜻한 여성들은 모두 여성운동에 참여하자.

가신 님의 명복을 빌며 저승에서라도 맺힌 한이 풀리도록 노력해야겠다.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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