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들여주는 옛이야기-춘분날에 용(龍)은 어디로 가나

입력 2006-03-21 07:26:57

얘야, 오늘은 춘분(春分)날이로구나. 태양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기 때문에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다는 날이다. 봄의 한가운데 날로서 세상 온갖 기운들이 아름다운 힘을 나타내는 날이지.

물론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어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 무렵에는 바람이 매섭고 추운 날도 있단다. '꽃샘'은 바람신(風神)이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여 입김을 세게 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단다. 그래서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에도 배를 타지 않았단다.

그러나 춘분날에서부터 약 20여 일 동안이 1년 중 기온이 가장 빨리 올라가므로 농사짓기에 알맞았지. 그래서 이때를 두고 옛사람들은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 고 하면서 농사에 힘썼단다.

겨울철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물러진 논두렁과 밭두렁이 무너지지 않도록 말뚝을 박고, 논에는 물을 잘 모이도록 도랑을 치기도 하였지. 또 퇴비 만들기, 마늘밭 거름주기, 보리밭 거름주기, 논에 흙넣기, 과일나무 가지치기, 장 담그기, 고구마 싹 틔우기 등 여러 가지 일을 시작한단다.

그러면 옛사람들은 왜 춘분날을 정했을 것 같니? 옛사람들은 농사를 잘 짓기 위하여 자연의 리듬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단다. 그리하여 1년을 스물네 마디로 나누었단다. 이 24절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절기로 춘분과 추분(秋分), 그리고 하지와 동지를 꼽았단다. 세상은 동서남북으로 되어 있는데 남과 북에는 하지와 동지가 있고, 동과 서에는 춘분과 추분이 짝지어져 있다고 본 때문이지.

옛사람들은 '춘분이등천 추분이잠연(春分而登天 秋分而潛淵)'이라고 하여 춘분날을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라고 보았단다. 세상에서 가장 상서로운 동물인 용은 춘분날에 하늘로 올라가서 가을의 한복판 날인 추분날에 연못으로 들어간다고 보았던 것이지. 그럼 정말로 용이 있어서 그렇게 할까? 이때의 용은 정말 있는 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표현이란다.

28수(宿), 즉 하늘의 28개 별자리 가운데에 동방 7수인 각(角), 항(亢), 저, 방(房), 심(心), 미(尾), 기(箕)를 가리켜 용으로 보았던 것이지. 맨 앞의 별이 '뿔 각(角)'으로서, 그것을 용의 뿔이라고 보고 붙인 이름이지. 항은 용의 목, 저는 가슴, 방은 배, 심은 엉덩이, 미는 꼬리라고 생각하고 붙인 이름이란다.

춘분날 저녁이면 용의 뿔에 해당하는 '각'부터 조금씩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매일 1도씩 서서히 올라가다가 점차적으로 가슴, 배, 엉덩이, 꼬리를 드러낸다고 보았지. 그 후 약 3개월이 지나면 머리에서 꼬리까지 자신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데 그 날이 바로 하짓날이란다.

하짓날 저녁 하늘을 보면 용의 머리는 남쪽 하늘을 향하고, 꼬리는 동쪽으로 내려져 있는 모습이 보인단다. 그러다가 추분일이 되면 용은 하늘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단다. 그 모습을 용이 연못으로 내려와 물 속으로 숨는 것으로 생각하였지.

이 얼마나 신나고도 깊은 상상력이냐?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자연을 이용하는 지혜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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