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대학입시 제도는 3년을 주기로 크게 바뀌고 있다. 왜 바뀌어야 하는지, 왜 3년마다 바뀌는지에 대한 설명은 뚜렷하지 않다. '개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과연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는지 검증할 방법도 없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개선'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대상이 되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는 사실이다.
2002학년도 입시를 앞두고 개편안이 발표됐을 때 학생들은 스스로를 '실험용 모르모트'라고 불렀다. 개편안은 마련됐으나 어떤 결과가 생길지는 실제 입시를 치러봐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내몰린 수험생들이 자조적으로 붙인 표현이었다. 2005학년도에도 우리 대입제도는 한 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이제 2008학년도 입시라는 더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바뀔 때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고 혼란과 좌절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2008학년도 대입 개선안 역시 교육부가 아무리 합리성을 강변해도 대상이 되는 수험생들은 '모르모트'가 된 심정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부는 학생부와 수능 등급제가 수험생들의 변별력을 확보하는데 충분하다며 2008학년도 대입안의 원칙을 준수하라고 대학들을 '반협박'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 교육부의 주장
▲ 학생부 변별력
교육부는 지난 14일 지난해 고교 1학년생 2만3천여 명의 학생부를 분석해 학업성적 변별력을 분석한 결과 학생부의 신뢰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우선 2008학년도 수험생의 학교 성적 기재 방식은 9개의 석차 등급과 원점수(평균, 표준편차)로 바뀐다. 교육부는 과목별로 1등급 4%, 2등급 7% 등 석차등급제의 지정 비율이 준수돼 성적 부풀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별력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2학기 고교 1학년생의 학생부를 분석한 결과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과목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78명(0.34%)에 불과했고, 4과목 이상 1등급을 받은 학생도 256명(1.11%)에 그쳤다. 3과목 이상 1등급자는 558명(2.42%), 2과목 이상 1등급자는 1천119명(4.85%)이었다.
고교 3년 동안 30여 개 과목을 이수하므로 석차 9등급제를 교과별로 다양하게 조합하면 상당한 변별력을 갖춘다는 게 교육부의 분석이다. 교육부의 시뮬레이션 결과 5개 과목에 등급만을 적용하면 점수는 1천287가지가 나오고, 표준점수를 사용하면 실질반영점수가 커질수록 점수 가짓수는 훨씬 많아진다는 것이다.
▲ 수능 변별력
9등급제가 도입돼 점수로 표기할 때보다 세밀한 변별력은 약화되지만 영역별로 등급을 조합하면 변별력은 충분하다는 것이 교육부의 분석이다.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등 3개 영역에 응시한 49만3천여 명 가운데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4천687명(0.95%)으로 전체 응시자 55만4천여 명을 놓고 보면 0.85%에 불과하다. 탐구영역을 포함한 4개 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716명뿐이다. 또 2개 영역 이상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도 1만7천597명(3.57%)에 그쳤다.
이론적으로 보면 언어, 수리, 외국어의 수능 등급 조합 수는 165가지이고, 여기에 탐구영역 4과목까지 포함하면 1만2천870가지로 늘어난다. 따라서 수능 점수를 다단계로 활용하면 학생부를 보완하는 변별력이 충분하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 대학들의 입장
교육부는 이 같은 분석 결과를 근거로 대학별 고사의 비중을 낮추라고 대학들에 요구하고 있다. 수시모집의 논술고사 비중을 50~70%까지 반영하는 등 대학별 고사를 통해 학생부와 수능 변별력을 보완하려는 7개 사립대 등 일부 대학의 2008학년도 대입안 무력화 시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인 전국 고교의 학생부를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부와 수능의 등급 조합 역시 실효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양자 간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는 수험생과 학부모로서는 애가 타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제도 시행까지 1년여가 남은 지금 시점에서는 대립의 내용보다 학생 선발의 주체인 대학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우선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이 어떤 자세를 보이는지 유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일단 대학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수한 학생을 뽑는데 학교의 운명을 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잠재 능력과 현실적인 학력 수준이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면 대학이 바라는 인재를 양성하기가 그만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대학이든 마찬가지다. 평균적인 인재를 뽑아 잘 가르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현재 200개가 넘는 전국의 4년제 대학 가운데 거의 절반이 정원을 못 채우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의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대학에나 들어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 학과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교육부와 대학의 대립은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전체 수험생의 상위 11%(1, 2등급) 안에 드는 학생들의 전형 요소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이다. 상위 11%를 벗어나는 범위에서는 교육부가 설명하는 방법만으로도 충분한 변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대학별 고사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도 상위 11%, 5%, 1% 안에 들어가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방법이다. 설령 교육부의 요구에 따라 대학별 고사 비중을 다소 낮춘다고 해도 대학들은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할 것이 분명하다. 수험생들은 이 같은 입시의 핵심 사항을 깊이 이해한 뒤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 수험생 대처 방법
▲ 학생부
모든 대학은 내신, 수능, 대학별 고사 이 영역이 다 우수한 학생을 뽑고 싶어 한다. 세 요소를 다 충족시키는 수험생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영역별 최우수 학생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기를 원한다. 그 첫 단계가 내신 우수자인데 현행 제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도이다. 이런 방식은 2008학년도부터는 고려대, 연세대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대학들이 도입할 예정이다. 따라서 내신 관리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내신 성적이 좋으면 수시와 정시 둘 다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재 고1, 2 재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내신 관리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 수능
내신 성적은 학교와 지역 간의 학력 격차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이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수시를 제외한 정시모집에서는 외형상의 반영률은 높아도 실질 반영비율은 가능한 한 낮추려고 할 것이다. 또한 내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선발하는 수시모집에서도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는 수능에 의한 엄격한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2학기 수시모집에서 연세대는 수능에 의한 최저학력 기준의 적용으로 조건부 합격자의 49%를 불합격시켰다. 이는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앞으로 수능이 현재보다 더 쉽게 출제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한 문제 실수로 어떤 영역에서 등급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5학년도의 국사, 2006학년도의 물리의 경우 한 문제만 틀려도 바로 3등급으로 내려갔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받은 점수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그 적용 방법 때문에 억울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8학년도부터는 등급만 나오기 때문에 각 등급 경계선에 걸려 한 등급 아래를 받을 경우 결과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따라서 특정 과목에 자신이 있는 학생도 방심은 금물이며 등급이 낮은 학생은 등급을 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대학별 고사
대학별 고사는 크게 '논술'과 '심층면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문계는 논술, 자연계는 심층면접을 주로 실시할 것이다. 교육부의 논술가이드라인에서는 영어지문의 출제와 본고사적 요소가 가미된 수리논술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어지문과 본고사 형태의 수학, 과학 문제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논술에 엄격한 제재가 가해질수록 심층면접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인문계의 경우 심층면접에서 고난이도의 영어지문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울대 경영대를 비롯한 일부 명문대학이 이미 지난해부터 도입하고 있다. 통합교과형 논술은 수험생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출제될 것이기 때문에 저학년 때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자연계는 이미 여러 대학이 대기실에서 문제를 푼 뒤 면접장에서 설명하게 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예전의 본고사와 다를 바 없다. 자연계 수험생은 수학, 과학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고 평소 깊이 있는 공부로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 실력만이 유일한 무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학들이 어떻게든 변별력을 높이려는 범위에 드는 상위권 수험생은 내신, 수능, 대학별 고사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논술과 심층면접이 강화되면 깊고 넓게 실력을 쌓은 학생이 유리할 것이란 전망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실력만 있으면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어떻게 시행돼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생활을 해야 한다. 내신, 수능, 대학별 고사의 출발점은 교과서이고 학교 수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교생활에 충실하면서 자신이 지망하고자 하는 대학의 전형요강에 주의를 기울이며 적절히 대비하면 교육부나 대학의 이런저런 발표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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