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혼이라도 달래줬으면"…'개구리소년' 아버지

입력 2006-03-17 10:06:40

세상에 이렇게 더 기구한 아버지들이 또 있을까.

개구리소년 5명의 아버지들. 아이들을 찾아 전라도 외딴 섬에서부터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수년을 헤매다니며 재산마저 탕진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3월 25일)를 열흘 남겨둔 16일 대구 달서구 이곡동 한 식당. 유족들에게 '지금 범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려 달랬더니 대뜸 소주부터 찾았다. 두 병, 세 병…. 소주병이 쌓였다.

아버지들은 공소시효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차라리 공소시효가 빨리 끝났으면 해요. 그러면 법의 심판에서 자유로워지는 범인들이 '양심 선언'이라도 하지 않겠어요." 영규(당시 11세) 군 아버지 김현도 씨가 한탄했다.

하지만 철원(당시 12세) 군 아버지 우종우 씨가 가만 있지 않았다. "무참히 살해당한 아이들의 고통은요? 범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세상을 활보하는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자신이 있습니까?"

유골 발견 당시, 소년들의 두개골에 나타난 무려 50군데의 골절흔은 날카롭고 무거운 흉기가 소년들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음을 짐작케 했다.

김현도 씨는 "매일 밤 소년들의 고통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며 "범인들은 단죄할 기회가 없다 해도 두번 다시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모두 생각을 바꿔달라"고 흐느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유족들에게 소년들 유골이라도 남겨줬으니 그것 하나는 고맙습니다. 범인들을 뒤쫓을 수 있는 단서 하나만 더 남겨 줬더라면 훨씬 고마웠을 텐데…." 우종우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얘기는 유골도 보지 못한 채 먼저 세상을 떠난 종식군 아버지 김철규 씨에게로 이어졌다. 1996년 난데없이 소년들의 살해범으로 지목돼 암매장 소문에 경찰이 집까지 파헤쳤다.

피폐한 심신에 병마가 찾아와 유골 발견 1년 전 숨을 거뒀다. "하늘나라에서 소년들을 먼저 만난 아버지가 뭐라 그러겠어요. 제발 범인들을 잡아 우리 원혼을 풀어달라는 절규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요."

20일 개구리 소년 5명의 아버지들이 서울로 올라간다.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 공소시효 연장 개정법 통과를 '빈다'.

실낱같은 한가닥 희망마저 끊기면 공소시효가 끝나는 26일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와룡산 현장을 찾아 범인들의 양심선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 법의 심판을 내리지 못한 아버지들의 잘못을 고하고 범인들에겐 "제발 얼굴이라도 보여 용서를 빌고 소년들의 사무친 원혼을 달래 달라"고 호소할 참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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