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골프파문…실세총리 끝내 'OB'

입력 2006-03-15 10:39:39

이해찬 총리가 '3·1절 골프파문'의 직격탄을 맞고 결국 낙마했다.재임기간에 유난히도 잦은 골프 구설수에 올랐던 이 총리는 '3·1절 골프'로 끝내 OB(out of bounds)를 낸 뒤 잇단 '벙커 탈출'에도 실패해 국정 제2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 총리는 고건 전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아 2004년 6월 30일 참여정부 두 번째 총리로 화려하게 등극했다.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 80년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대표적 민주화 인사로 꼽히는 그는 '첫 운동권 출신 총리'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 총리는 총리 재임 중 역대 어느 총리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실세총리'로서 굵직굵직한 업무를 무난히 처리해 '일하는 총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분권형 국정운영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직선적 성격에 '방탄 총리'로 야당엔 그야말로 미운털이 박혔다. 2004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를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 원을 받은 정당 아니냐"며 '차떼기당 발언'을 해 2주일가량 국회 공전사태를 야기한 바 있다.

골프 파문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됨으로써 입을 정치적 타격도 만만찮아 보인다. 5선의원으로 3차례의 정책위의장(국민회의 1번, 민주당 2번)과 열린우리당 창당기획단장, 교육부 장관 등을 거치며 여당의 대선 후보군 반열에 오를 정도로 '거물'이 된 이 총리로서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가 당에 복귀한다 해도 곧바로 '몸무게'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할 경우 책임론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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