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
사회 공동체에서 언어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아래 지문들의 내용에 근거하여,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시오.
[가] 인간이 벌이나 다른 군서(群棲)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자연은 그 어떠한 것도 헛되이 만드는 법이 없다. 자연은 모든 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언어 능력을 부여했다. 언어는 발성 능력과 다르다. 다른 동물들도 소리는 낼 수 있으나, 그들의 소리는 단지 고통스러움과 쾌적함을 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도 본성적으로 쾌와 고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느낌들을 소리를 질러 서로에게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그러므로 의로운 것과 의롭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진정한 차이는 인간만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을 지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동의 인식을 소유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
[나] 사람은 논변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사람은 누누가 홀로 서 있으면서도 의사소통적 문맥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이상적인 의사소통 공동체'가 의미하는 바이다. 논변적 담론의 참여자들에게 요구되는 합의는 현실적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야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속하여 있음에서 오는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은 이런 담론 속에서 손상되지 않고 유지된다. 담론에 의해 합의가 가능하가는 사실은 다음 두 사항에 의거한다. 하나는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양도 불가능한 개인의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기중심적 관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비판 가능한 주장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로 대응할 수 있는 개인의 불가침적인 자유가 없다면, 동의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한편 각자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지 않는다면, 오랜 토론을 거치며 숙고해도 보편적 동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자율성을 지닌 동시에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관계망의 구성원이다. 이 두 국면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담론을 통한 결정 절차에서는 바로 이런 연결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다] 토론을 하는 사람은 의(義)로써 서로 돕고, 도(道)로써 서로 깨우치고, 선(善)을 따를 뿐 반드시 이길 것을 구하지 않으며, 이에 승복할 뿐 말이 막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거짓으로써 서로 미혹케 하고, 화려한 언사로써 서로 혼란스럽게 하고, 나중에 멈추는 것을 서로 자랑으로 여기며, 어떻게든 이기기만을 바라는 것은 토론을 함에서 본받을 바가 아닙니다. 무릇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제후들을 현혹시켜 대국을 망하게 하고 군주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하였으니, 이들이 변설에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말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길이었습니다. 군자는 비속한 사람들과 더불어 군주를 섬기는 것을 꺼려하였으니, 그들이 군주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면서 어떤 일도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바르고 의로운 말을 받아들여 경(卿)?상(相)을 보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여 당장의 유리한 말만을 좋아하며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 같은 식으로 관리 노릇을 하면 마땅히 중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출제 경향 및 논제 파악하기
전통적으로 이화여대의 논술 문제는 인문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어 왔다. 시사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 찬반 견해를 묻거나 특정 학문의 특정 이론을 배경지식으로 요구하는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2003), '소비 사회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해결 방안'(2004), '신화, 소설 등 비일상적인 것들의 기능'(2005)을 물었던 기출 문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2006학년도 정시 모집 문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 논술의 주제는 '언어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것이다. [문제]에서는 논제를 좀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언어라 어떤 방식으로 사회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논술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학생들은 아마도 언어학이나 사회학 관련의 이론들을 떠올리며 더 깊은 배경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했을 성 싶다. 그러나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학교의 교육과정에서도 다루어졌을 법한 주제이다. 또한 학생들 각자가 사회적 관심이나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여 얼마든지 응용해 볼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주어진 제시문 속에 숨어 있는 실마리들을 잘 활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첫 문장은 "사회 공동체에서 언어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로 시작되고 있다. 이런 문장은 주어진 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정보를 제공한다. 아마도 학생들이 언어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논할 때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라는 측면세 집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지 말고 '그 이상의 역할'을 생각해 보라는 숨은 길잡이로 읽어내야 한다.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문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히 읽어야 출제자가 배려한 이정표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이화여대 논술 문제에는 해마다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빠지지 않고 붙는 요구사항이 있다. '아래 지문들의 내용에 근거하여'와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라'가 그것이다. '지문의 내용에 근거하여'는 문제가 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잘 살펴 이에 맞게 글을 구성하라는 주문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라'는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아무나 읽어도 그만인 밋밋한 글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개서 잉T는 사고를 보이라는 요구이다. 뻔한 인용이나 예시보다는 참신한 논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 구절은 학생이 사전에 유사 논제에 맞추어 암기식으로 준비한 논술문을 피하라는 주문이다. 출제 의도에 맞추어 글을 작성해야 평가자들이 채점하기에도 편하고 학생의 사고 수준을 평가하기에도 좋다. 실제로 각 대학의 논술 담당 교수들은 붕어빵을 찍어낸 듯한 똑같은 주장과 논거들 때문에 채점하기가 난감했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논제가 요구하는 방향을 따라 한 발짝 나아간 생각을 풀어내지 못하고, 익숙한 지식 패턴에 맞추어 글을 작성하다 보니 너나없이 다 알고 있는 뻔한 공식에 맞춰 글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제시문을 올바로 분석하고 독창적 사고력을 보이라는 논술 평가 기준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 자기 생각 쓰기
학생들은 대개 분석한 내용을 가지고 '자신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을 가장 까다롭게 여긴다. 사실, 논술의 변별력도 제시문 분석보다는 주로 이 대목에서 발생한다. 독해 분석력보다 창의력과 논증력의 격차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시문 안에 힌트가 숨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 비법은 '꼼꼼하게 살펴보기'와 '현실에서 사례 찾기'이다.
예를 들어, '윤리적 가치를 공동으로 인식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고 언급한 제시문 (가)의 핵심 내용에 주목해 보자. 여기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례를 떠올려 보면 지지 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남북의 이질적인 언어 문화는 혹시 어떨까?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동지', '당파성', '혁명' 등 계급성을 강조하는 어휘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주체사상을 강조하고 노동자 중심의 언어를 사용하려는 경향 때문에 외국어를 순우리말로 바꾼 사례가 많다. 한자어의 경우 '견인선(牽引船)'은 '끌배', 외래어 '볼펜'은 '원주필', 일상 용어 '도시락'은 '곽밥' 등으로 표현하는 데, 이는 남한의 표준어와 다른 예들이다. 또 '효과를 얻다'를 '은을 내다'로, '책상다리를 하다'를 '올방자를 틀다'로 표현하는 등 말의 형태에서도 우리와 완전히 다른 것도 있다. 이런 언어들은 북한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통일 이후를 준비하자는 논의 속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 과제가 바로 민족 동질감의 회복이며 첫째로 꼽는 것이 언어 이질화 문제이다.
그 밖에도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칠 때 우리 선조들이 언어를 민족정신과 동일시 여기며 항거했던 전례가 있다. 주권을 빼앗긴 조국을 등지고 제 3세계로 떠났던 해외 한인들이 자식에게 한글을 전수함으로써 민족의식을 살려내는 것도 떠올려 볼 만하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조선족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면서도 한민족의 풍습과 민속을 통해 자치구를 지켜내는 데에는 언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들 모두 언어가 가치관과 문화를 담아내고 그 속에서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사례들이다.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계층, 집단 간에 벌어지는 일에도 눈을 돌려보자. 인터넷에서 청소년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이모티콘과 채팅 언어는 익숙한 계층의 동질감을 쉽게 형성해 주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TV의 특정 개그 프로그램들이 양산하는 유행어는 그것을 시청하지 않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다. 언어를 달리 사용하고 유머를 구사하는 규칙이 달라지면 대화의 어려움이 증폭된다. 여기에서는 공동체의 결속을 느슨하게 만드는 부정적 사례를 통해 논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수 있겠다.
한편, 제시문 (나)에서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 '자기중심적 관점의 극복', '담론에 의한 합의' 등도 논술문 작성의 실마리를 준다. 이 구정들에 착안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상호 관계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할 권리를 억누르고 자기중심적 관점만 내세우면 합의는 불가능하다. 또한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것도 담론 형성을 어렵게 한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왜곡하면 힘에 의한 질서만이 남을 뿐이다.
실제로 하버마스는 올바른 대화의 기준으로, 서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참이어야 하고 성실히 지킬 것을 믿을 수 있음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평등해야 함을 들었다. 제시문의 내용만으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언어 행위가 민주 사회의 윤리성과 상통함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집단 간에, 그리고 나아가 국가 간에도 이 원칙이 적용될 분야는 많다.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구체적 모습으로는, 소신 있는 소장파 정치인들이 당의 압력에 눌려서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양심적 견해가 쉽게 묻히는 경우는 어떨까. 조직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당했던 사건들도 종종 쟁점이 되고 있다. 과거 독재 정치 기간에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도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모두 다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개인이 가진 표현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점이 동일하다. 그러다 보니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자기만의 입장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며 억지 동의를 얻어낸다.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면 의사소통 공동체는 먼 이야기임을 강조해 볼 수 있겠다.
제시문 (다)에서는 토론에서 피해야 할 여러 자세들이 거론되고 있다. 거짓말과 화려한 수사는 인간 관계의 신뢰성에 금이 가게 한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잘못은 먼저 인정하며, 이기는 것보다 옳음을 추구해야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권력에 아부하고 옳은 소리를 숨기는 것은 공동체의 자정 능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황우석 교수 사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던 당시 거짓 보도를 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나,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했던 네티즌들의 자세는 반성해볼 지점이다. 또한, 권력을 감시해야 하고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 하는 언론이 독재 정권에 아부했던 모습도 지적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방송 매체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익 단체의 대변자들이 감정 싸움과 승패에만 집착하는 모습도 흔히 보게 된다. 이런 점을 비판하면서 옳음을 목표로 삼고 바른 말을 사용하는 토론이 공동체를 위하는 일임을 강조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더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하거나 읽었던 책의 내용을 인용해도 좋다.
종합해 보면, 올해 문제의 출제 의도는 '언어가 공동체의 연대성과 윤리성 확보에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잘 풀어내는지 평가하려는 데 있다. 제시문 독해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므로, 숨어 있는 단서들을 찾아내어 우리의 현실 맥락과 연결시킨다면 좋은 글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송원&이슈 논술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