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의 침략으로 조선 팔도가 전란에 휩싸여 있던 1596년(선조 29년) 9월 15일, 영남 유림 출신인 32명의 의병장들이 팔공산 상암으로 집결해 왜적토벌의 결의를 다짐했다. 이른바 팔공산 상암 회맹(八公山 上庵 會盟)이다.
많게는 수백명에서 적게는 수십명의 의병을 이끌고 모여든 의병장들은 자신의 자(字)를 소재로 오언구(五言句)의 희연시(戱聯詩)를 지어 돌아가며 낭송을 했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맹약하는 절박한 순간에도 시정과 풍류를 저버리지 않은 승화된 선비정신의 과시였다.
의병장 중 청송의 조동도(趙東道)공은 18세의 선비였고, 영천의 정세아(鄭世雅)공은 61세의 고령이었다. 영해의 박의장(朴毅長)공은 20세의 아들 유(楡)와 함께 부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팔공산 산세와 인근 고을 지형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수차례에 걸쳐 왜적을 격퇴했다. 각 향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면 회맹 의병장들과 연합작전을 펴기도 했다.
정유재란(1597년) 때는 이들 의병장 대부분이 군사를 이끌고 창녕 화왕산성에 입성해 곽재우 장군과 함께 성을 지키고 퇴각하는 왜군을 추격해 무찔렀다. 그로부터 4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21세기 어귀에 전국에 흩어진 회맹 의병장들의 종손과 지손들이 우국충정의 깃발 아래 고장과 나라를 지킨 선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후손들은 2002년 2월 15일 대구에서 첫 만남을 가진 이래 분기별 회동을 가지고 추모회(회장 이병목 전 울진군수)를 결성했다.
학봉 김성일 선생의 종손인 김종길씨와 이용태 박약회 회장(전 삼보그룹 회장), 정재영 전 경주시 교육장, 박찬규 전 사천시장, 유용훈 담수회 구미지부장, 이대식 전 경북도 건설국장,
정관 전 대구교대 총장, 남응시씨(의병장 남경훈의 15대 주손), 정가진씨(대제학 정경세의 13대손), 조영목씨(이조판서 조호익의 15대 주손), 김종환씨(기업인)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추모회는 우선 '팔공산 상암 임란창의제현행록'(八公山 上庵 壬亂倡義諸賢行錄)이란 책자를 발간했다.
이어서 의병장들의 발자취를 청사에 길이 남기기 위해 임란창의 32의병장 추모유적비'(壬亂倡義三十二義兵長 追慕遺跡碑)를 팔공산이나 망우공원에 건립하기로 뜻을 모으고, 현재 대구시 및 동구청과 협의를 하고 있다.
이완재 영남대 명예교수는 "상암 회맹 의병장들은 더러는 전장에서 최후를 맞았고, 더러는 전란 후 수습에 나섰으며, 이름없이 역사의 그늘에 묻히기도 했다"며 "견위수명(見危授命)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몸소 실행했던 선현들의 행적을 재조명하는 것은 흐트러진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