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쇼핑 소비자 약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입력 2006-03-11 09:24:29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각종 계약의 약관이나 설명서가 되려 소비자의 혼란을 부추기고 소비자권리를 위축,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법원에서 어려운 문구로 가득 찬 판결문을 고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만큼 이해하기 힘든 용어로 뒤덮이고 너무 길게 작성된 약관, 계약서, 설명서 등에 대한 개선 요구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보험약관에는 일본식 한자어의 잔재나 전문 의학용어가 넘쳐나고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시니어케어보험에 가입한 이기동(66·대구 수성구 파동) 씨. 20쪽 분량의 약관을 펼쳤다가 상해 내용에서부터 글읽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장 골절 상해 내용부터 온통 낯설었다. 대퇴(넓적다리), 하퇴(종아리), 상악(위턱), 하악(아래턱)은 그나마 나은편. 머리의 '압궤'손상, 등뼈의 극돌기 및 횡돌기, 서혜부처럼 한자표기조차 없는 낯선 한자어나 코레스골절, 헤르니아 같은 영어 표현은 의미 추측마저 쉽지 않았다.

용어풀이조차 순 한자어였다. 코레스골절을 '요골원위단골절로서 손목에 가까운 전완골 골절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 씨는 "외국계 보험회사까지 이렇게 어려운 한자용어들을 그대로 따라쓰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읽기 어려운 약관을 만들어 제대로 보험금을 못 받게 하려는 것 아니냐"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인터넷으로 7,8종의 생명보험, 손해보험 약관을 확인한 결과, 어려운 전문용어는 대부분 보험금 지급 대상의 질병, 장해 내용에 몰려 있었다.

한 어린이 보험 약관은 전암병소, 경계성종양, 추상, 추간판탈출증 등 어려운 의학용어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

전암병소는 암으로 발전하기 이전의 병터, 경계성 종양은 악성과 약성의 중간 단계, 추상은 추한 모습, 추간판탈출증은 디스크로 쉽게 표기해도 되지만 굳이 보험업계는 어려운 단어를 고집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보험용어 개편작업에 착수, 시방서는 설명서, 두부는 머리, 부보는 보험가입 등 어려운 한자어를 순화했고, 경결은 경화(단단하게 굳음) 등으로 의학용어를 정비했지만 아직까지도 옛 단어들을 그대로 쓰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또 인터넷 사이트 이용 및 가입 약관이나 카드, 의약품 설명서 등에는 너무 길거나 깨알 같은 글씨가 많아 의도적으로 약관읽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한 인터넷 쇼핑몰 이용약관은 겨우 4,5줄만 읽을 수 있는 작은 창에 30조 300줄 분량의 약관을 집어 넣고 있다.

많은 인터넷 홈페이지 약관들이 소비자 인내심을 시험하며 약관 읽기를 포기하고 곧바로 상품 구입이나 회원가입에 동의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글씨가 너무 작아 판독 불가능한 약관, 설명서까지 넘쳐나고 있다.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큰 창에 약관 주요 내용만 축약하자는 네티즌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신문활자 반밖에 안되는 깨알 같은 글씨의 신용카드 약관에 경고조치를 내렸다. 약관 읽기를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

소비자단체들은 "요지설명도 없이 엄청나게 긴 문장들은 전자제품에서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며 "짧고 쉽게 약관개선이 절실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