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국회의원 왜 하나요

입력 2006-03-02 11: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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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국회에선 국무총리와 야당 국회의원이 또 얼굴을 붉혔다. 흥분한 목소리에 눈가에는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회의장은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고 훈계했지만 이어진 말싸움에서도 상대에 대해 존중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당 의원은 "한 나라의 총리가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의 말에 눈을 부라리고 말마다 쫑쫑쫑 토를 다느냐"고 힐난했다. 의정 생활 18년째라는 총리는 "대정부 질문이 지금처럼 난잡한 적은 없었다"고 맞받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야당 사무총장이던 의원은 술자리 성추행 사건으로 배지를 떼일 처지에 몰렸다. 유아 성추행 살인 사건으로 달아오른 여론은 그의 행동을 범죄로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즉각 그와 관계를 끊었다. 의원직을 내놓으라고 나섰다.

이 판에 부산의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인 한 의원이 "후진적이고 악성적인 술 문화의 희생양일 뿐"이라며 "여론 재판으로 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의 글에는 비난 댓글이 쏟아지기도 했다.

두 장면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 할 만하다. 정치 현장의 모습이며, 정치 현장을 만들고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다.

여야 의원들도 사석에선 같이 밥을 나눠 먹고 농담도 주고받는다. 그러나 카메라가 비춰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안면 몰수다. 정책 토론을 해도 나만 옳다며 상대의 의견은 듣지 않는다. 아예 눈에 띄려면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인신 공격을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막말과 몸싸움에 조롱과 멸시가 국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정치의 메마른 다툼은 선출직을 직업으로 여기는 탓이다. 그러나 선출직은 뽑힌 사람을 위한 일자리가 아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할 뿐 누가 그 자리에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직업으로서의 선출직은 표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표가 달아나는 소리가 나면 주눅 들어 소신은 아예 자취를 감춘다.

거의 해마다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도 국민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법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정치가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좌우하는데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당연시한다. 선진 정치를 외치면서도 우리 정치의 성숙을 위한 투자에 외면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뜻이 다른 정치적 판단에는 무조건 달려들어 욕을 한다.

술자리 의원의 추태를 감싸줄 생각은 없다. 다만 어제의 동지에 대한 동료 의원들의 인간적 무심이 아쉽다. 한솥밥을 먹은 처지이면서도 위기가 닥치면 '내 배'만 생각하는 인심을 탓하고 싶다. 뒤로는 연민을 토로하면서도 불통이 튀어 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공과 사는 구별돼야 하고 공직자의 엄정한 처신은 당연하지만 인간의 도리는 그런 게 아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끼리의 도리는 남아야 한다. 그 다음 죄를 따져야 단죄의 효과도 크고 신뢰와 설득력도 얻을 수 있다.

이참에 성매매 방지법이 생각난다. 이 법의 제정 전후 사석에서 만난 국회의원 대부분은 문제점을 우려했다. 그러나 아무도 반대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 40년 전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 학급회의 때 '착한 사람이 되자'에 대해 토론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착한 사람이 되자는 데 누가 반대할까.

그러나 정치의 선진화는 구호에서의 탈피에 있다. 정치는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일순간에 결딴낼 수도 있다. 선출직 자리는 언제라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장관에게 조롱이나 당하고 표가 달아날까봐 눈치만 살피며 죽어 가는 동료에게 눈물조차 흘려 주지 못할 바에야 국회의원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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