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대뜸 마주하자마자 시를 읊었습니다. 서정주의 '동천(冬天)'이란 시입니다. 미당(未堂)이 20대 시절 '화사(花蛇)'에서 보여준 관능적 이미지를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 비로소 천상의 이미지로 승화시킨 노래랍니다.
시인 도광의(65)씨는 누구보다 많이 명시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시작(詩作) 때 퇴고를 많이 합니다. 명시의 주옥같은 글귀가 창작시에 그대로 옮겨지는 일이 많아 이를 지우고 다른 시어를 찾다보니 그렇답니다.
동료시인 박종해, 정민호씨와 함께 3인 시집을 준비 중인 시인을 만나 맛 이야기와 시에 대해 들어 봤습니다.
"시인은 비생산적인 사람들입니다. 돈과 무관하게 사물을 관찰하거나 추구하고 그 속에서 자기몰입에 빠지기 일쑤지요."
늘 이른 아침에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시며 작품에 몰두하는 시인이 습작노트를 들고 자연산 회와 아구탕 전문점인 '어부이씨'에서 점심차 기자와 만났다.
어부이씨는 시인이 시를 쓰고 늦은 아침을 먹으려니 아내가 지은 식은 밥과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던 터에 우연히 출판사 지인과 들러 먹었던 아구탕과 아구찜이 별미로 느껴져 자주 오게 된 단골집. 술을 좋아하는 시인에겐 다음 날 해장국으로도 안성맞춤일 뿐 아니라 입맛도 되찾게 된 김에 한달에 대여섯 번을 들른다.
오랜 교직을 물러난 후 여전히 많은 문인과 지인을 만나느라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시인은 "아마 지역 문인 중 소주는 전상렬이, 맥주는 도광의 따라 올 사람이 없을거요"라며 껄껄 웃었다.
이전엔 무엇이든 잘 먹었으나 지금은 맛있는 음식은 찾게 되더라는 것. 그럴 때마다 시인은 소년 시절 먹던 음식 맛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요리책을 통해 배운 솜씨는 아니었지만 어머니 손맛은 최상의 반찬이었다.
봄날 파잎 무침이나 된장에 담근 풋고추, 듬성듬성 썬 채소를 밥과 함께 쓱싹쓱싹 비벼 모양새 없이 꾹 그릇에 담아낸 음식이 어떤 고급요리보다도 맛깔스러웠다고 시인은 지긋이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풋고추 장아찌를 깨물었을 때 입안 가득 번지는 짭조름한 그 물은 식욕을 돋우는 촉진제외 다름 아니었죠."
여름철 칼국수와 수제비, 가을철 무잎을 잘게 썰어 양념에 무친 나물 반찬과 나박김치는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 수밖에 없다는 게 시인의 맛 추억이다. 덧붙여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목포 문학기행 때 맛본 홍탁의 맛이란다.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처음 보면 까닭 없이 호기심이 일고 계속 그녀와 있고 싶은 마음이 들 듯 밤새도록 친구와 홍탁을 안주삼아 술을 먹고픈 강한 유혹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 원대시장 안 풍미식당 돔배기 안주도 별미로 시인이 제자나 지인들과 자주 찾는 곳 중 단골집이다. 맛도 맛이지만 이 곳엔 교양 있는 여주인의 인품에 더 끌린다고 시인은 속삭였다.
그래서 일까. 시가 뭔지를 묻자 "시는 잊혀지지 않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라고 답했다.
1965년 당선작 없는 가작인 '비에 젖은 홀스타인'과 1966년 '해변에의 향수'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시인은 지금까지 '갑골길'과 '그리운 남풍' 등 2권의 시집을 냈다.
1967년 마산고에서 첫 교편을 잡았던 시인은 아직도 그 때 쓴 '무학산을 보며'를 즐겨 읊곤 한다고 했다.
"무학산에 서설이 내리면/봄이 길다…"라고
시인의 창작열도 서설 뒤의 긴 봄처럼 오래가길 빌어본다.
◇어부이씨
대구 남구 대명동 앞산 순환도로 변에 있는 어부이씨는 자연산 회와 복어, 아구요리 전문점.
특히 아구는 남해와 동해에서 나는 생물을 들여와 탕과 찜을 만들기 때문에 국물맛이 담백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아구찜의 경우 아삭한 콩나물과 함께 맵지 않게 요리해 내는 데 쫄깃하고 부드러운 아구살과 갖은 채소가 잘 어울려 구수한 맛을 낸다. 자연산 횟감으로는 주로 우럭, 돔, 쥐치, 게르치, 광어 등을 준비해 놓는다.
아구탕과 복어탕 1인분 1만 2천원, 수육 4만~7만원, 찜 3만~5만원, 자연산 회 5만~7만원.수용인원 300명, 주차 100여대. 053)621-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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