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춧가루 위에 달콤한 조청이 사르르 내려앉는다. 하얀 찹쌀과 소금도 눈 녹듯 녹아든다. 큰 주걱으로 몇 번 휘휘 젓자 연신 군침 삼키는 소리. "엄마, 너무 신기해요. 나도 한 번 먹어볼래요."
사먹는 고추장에 익숙한 젋은 주부들과 아이들이 반죽조차 힘겨워하자 신양숙(41·대구 달성군 화원읍) 씨가 베테랑주부답게 익숙한 시범을 보인다. "너무 잘 한다"는 주위의 농담에 신씨는 "오늘 아침에도 장 담그고 왔다"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제 다 만들었으니 한 통씩 담아가세요." 고추장 담을 유리병을 나눠주자 모두들 흘릴세라 조심조심 국자로 퍼담는다. 황해숙(35·대구 동구 신평동) 씨는 "직접 만든 고추장이 너무 맛있는데 통도 제일 큰 것으로 받았다"며 흡족한 표정.
엄마들이 고추장 담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어느새 김인석(37) 목사 옆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이름조차 생소한 '대나무 딱총'때문이다.
"잘 보세요. 이렇게 젖은 신문지를 말아 넣고 꼭꼭 두드려 넣은 다음 밀면 됩니다." 설명대로 따라해보지만 아이들에겐 어려운 모양. 보다 못한 김관경(43·상주 남성동)씨가 팔을 걷고 나선다. "상주에 살고 있어도 농촌체험할 기회가 없었는데 딸 민수(7)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것 같아 저도 즐겁네요."
헛개나무와 오가피를 넣은 가마솥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한 쪽에선 이화실(47) 월외리 녹색농촌체험마을추진위원장 등 주민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땅을 판다. '자연 김치냉장고'를 꺼내기위해서다. 윤금민(13·대구 북구 동변동), 민지(10) 자매는 "김치를 땅에다 묻어둔 걸 처음 본다"라며 자리를 떠나지못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오후 8시 허브농원. 촉촉히 내리는 봄비에도 체험객들은 즐겁기만 하다. 화려한 캠프파이어가 시작된 것. '탁- 탁- 탁- 탁.' 기름을 부은 대나무가 타들어가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에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모두들 가족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동안 이창우(43·대구 수성구 욱수동)씨는 분주히 손을 놀린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숯불 닭구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바베큐통 옆에 모여 차례를 기다린다.
"집에서 시켜먹는 프라이드치킨보다 훨씬 맛있어요. 도대체 뭐로 양념한 거예요?" 청주를 대나무에 넣어 만든 '청죽주'와 직접 빚은 동동주 한 잔에 아빠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산촌의 밤은 그렇게 정겹게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닭 홰치는 소리에 깬 집집마다 뭉게뭉게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동구 밖 뒷산에도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다.
"잘 주무셨어요? 지내시기 불편하셨죠." "아녜요. 방이 너무 뜨거워 혼났어요." 하룻밤을 보내고 벌써 정이 들었을까. 주민과 체험객들이 아침인사를 정겹게 건넨다.
"온통 늙은이뿐인 시골에 간만에 애들 웃음소리가 가득해 너무 기분이 좋쿠마.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 아이겠능교." 마을에서 유일하게 소를 키우는 이화춘(58)씨가 소죽을 끓이다 말고 환하게 웃는다.
빡빡한 일정에 서둘러 아침을 들고 모두들 버스에 오른다. 이튿날 체험은 청송 군립 야송미술관->한지 만들기체험->송소고택 탐방이다.
영덕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야송미술관(진보면 신촌리)에서는 조각전을 열고 있는 장용호(55) 씨가 손수 조각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 곳은 청송 파천면 지경리 출신인 야송 이원좌(67) 씨가 기증한 36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 지난해 4월 문을 열었지만 벌써 1만6천명이 다녀갔다는 설명에 모두들 놀라는 눈치다.
7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자성 기능보유자가 전통 재래기법으로 제작하고 있는 한지 체험장도 인기 '짱'. 국산 닥나무을 불려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본 뒤 모두들 '명장'처럼 한지를 만들어보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여러분! 측간과 뒷간, 통시의 차이점을 아세요?" 송소고택(경북도 민속자료 63호·파천면 덕천리)에선 황용모(61)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운다. 담 둘레가 2km에 이르고 99칸이나 되는 대저택의 규모에 다시 한 번 놀란 모습.
주부 권영명(37·대구 달서구 장기동)씨는 "잘 알려지지않은 지방문화재를 알게 돼 보람있었다"라며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청송·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사진 : (위)지난달 25, 26일 청송군 월외리 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열린 매일신문 독자 농촌체험에서 어린이들이 대나무 딱총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래)마을주민들과 함께 만든 고추장을 조심스레 담고 있는 체험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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