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사이비가 많은 세상이라 어쩌다 전혀 기대치 않은 상황에서 진짜를 만나면 거의 횡재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 '진짜'란 것은 대체로 소박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벌써 몇 해 전 일로, 친구와 함께 서해안의 어느 포구를 찾았다가 선창가 한 모퉁이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아주 인상적인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낡은 적산가옥을 일부 개축하여 들어앉은 그 업소는 아주 영세한 규모의 시골 식당이었다. 그러나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조촐한 내부 꾸밈새가 깨끗이 빨아 잘 손질해 놓은 헌 옷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주방과 홀 사이에 커다란 음식 배출구가 뚫려 있어 안이 잘 들여다보였는데, 굉장히 정리정돈이 잘 돼 있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거기서 하얀 가운과 높다란 조리사 모자를 쓰고 일하고 있는 주방장은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깐깐한 인상의 남자였는데 한눈에 그가 곧 주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주방장 겸 주인 아저씨는 우리가 시킨 자장면과 짬뽕 한 그릇씩을 위한 분량의 밀가루 반죽을 떼어 철썩거리며 수타면을 뽑기 시작했다. 도중에 종업원이 전화로 배달 주문을 받아 '짜장면 두 그릇'을 주방에다 외쳤으나 그는 딱 우리 몫의 국수만 뽑고 돌아서서 불판으로 다가갔다. 뒤돌아선 그의 팔이 춤을 추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중국 음식 특유의 향내가 코를 찌르더니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맵시 있게 담긴 그릇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 음식은 풍미가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썩 괜찮은 것이었다. 조미료 같은 걸 쓰지 않고 신선한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조리원칙을 제대로 지켜 만든 정직한 음식이었다. 나는 우리가 첫 젓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 주방장이 부엌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눈치챘다. 자기가 만든 음식에 대한 손님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족해하는 것 같으니까 그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배달주문 들어 온 자장면 국수를 뽑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또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종업원이 다시 '짜장, 우동, 짬뽕 몇 그릇'을 외쳤으나 그는 이번에도 먼저 주문 들어온 자장면 두 그릇분의 국수만 뽑을 뿐이었다. 웬만하면 한꺼번에 뽑아서 처리할 만한데 결코 그러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음식 나오는 시간이 보통 중국집보다 조금 오래 걸렸다. 그러니까 그는 주문된 모든 음식을 절대 서두는 법 없이 한 그릇 한 그릇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양 공들여 만드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장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인 듯했다.
우리가 음식 값을 치르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하자 그는 자그마한 얼굴에 온통 주름을 잡으면서 정말 기뻐하는 눈빛으로 활짝 웃었다. 그것은 바로 '진짜'의 얼굴, 소박한 충일(充溢)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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