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을 살려내자."
여고남저는 전 세계적 화두다.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수십 년 먼저 딸들의 맹활약상과 아들들의 학습 부진(Boy's Underachievment)을 경험하고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올 초 '공부 못하는 남학생, 공부 잘하는 여학생'을 번역 출판한 독일 유명 여성 방송앵커 카트린 뮐러 발레는 "독일 사회단체들은'남학생들을 장려하자'는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고 소개한다.
상대적으로 남고여저에 익숙해 있던 대구에도 최근 수년새 여고남저의 전세 역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도권에 이은 남녀공학 중·고교 보편화가 어릴 때부터 벌어지는 여고남저 학력차를 입증, 아들 둔 학부모들의 남녀공학 기피 조짐이 불거지고 있으며 대학 졸업 후 사회에서 치르는 시험에서도 온통 '여인천하'가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과 일선 교사들은 "지역·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더 이상 여고남저를 수수방관할 때가 아니다"고 말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남학생 학습부진의 원인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해 아들들을 살려내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아들들을 딸들 위에 올려놓자는 게 아니라 딸들이 홀로 앞서 나가는 일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학교에서="따로 성적을 매기지 않는 초교에서도 여학생들의 지적능력이 남학생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대구 삼덕초교 신경식 교사는 "여고남저 학력차는 초교때부터 벌어지고 있다"며 "과목별 상· 중· 하에서 여학생들의 상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공부 잘하는 여자아이들이 여러 남자아이들을 거느리는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
2년전 남녀공학으로 바뀐 지산중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영란 교사의 말. "한 반에 10명 남짓한 국어 '상' 중에서 남학생 숫자는 2,3명에 불과해요. 개인차가 있지만 언어 능력을 비롯, 상당수 영역에서 여학생들의 실력이 남학생들을 앞서나가는 것 같습니다."
초·중교에서의 여고남저 학력차는 고교로 이어져 아들 둔 부모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구 1학군(중구, 동구, 북구, 수성구)내 한 남녀공학 고교. 지난해와 올해 남녀 상위권 비율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난해 신입생 전교 1등~21등 가운데 남녀 비율은 14대 7이었지만 올해는 7대 14로 전세가 바뀐 것. 교사들은 "남고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지난 3년간은 남학생이 강세였지만 최근 1학군내 남녀공학 중학교가 늘어나 여고남저 학력차가 두드러지면서 단번에 전세가 역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고남저 학력차는 남학생들과 남학생 학부모들의 남녀공학고교 기피 경향을 불러오고 있다. 바뀐 교육 제도에서는 내신이 대학 입시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 대구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아들을 둔 학부모들은 남녀공학을 꺼리는 반면 딸을 둔 부모들은 남녀공학을 선호하는 웃지 못할 세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남녀공학에서는 아들들의 내신을 높이기 위해 남녀 따로 매기는 체육 과목도 통합 성적을 내야 한다는 학부모들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시험에서=지난해 행정고시 행정·공안직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은 44%까지 상승했고 사법고시에서도 여성 합격자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32.3%를 기록했다. 행시에서는 수석과 최연소 합격자를 여성이 거머쥐었고, 사시에서도 여성이 수석과 최고령 합격의 영예를 각각 차지했다. 지난해 행시의 경우, 교육행정은 여성이 최종합격자 9명 중 5명으로 55.6%를 기록했고, 국제통상에서도 여성이 14명 중 7명으로 50.0%를 점유했다.
국내 한 취업사이트의 지난해 10대 뉴스 중 랭킹 5위는 바로 '취업 여풍'. 대구 최대 자동차부품업체 (주)SL 정현백 인사 과장은 "단순 노무직이 아니라 기술연구본부의 대졸 여사원 채용이 최근 3년새 매년 7,8명을 유지하고 있다"며 "자동차부품업체의 특성상 남성 사원의 비율이 여전히 높지만 여사원이 2,3명에 불과했던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채용 제한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시정 권고조치를 받은 경찰에서도 시험 성적으로만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여인천하'가 불가피할 전망. 대구지방경찰청 한 간부는 "채용 제한 비율이 없어지면 경찰 채용 시험에서 여성 숫자가 남성을 추월하고 경찰 간부의 핵심축인 국립 경찰대도 온통 여자 세상이 될 것"이라며 "강력범죄를 다루어야 하는 일부 근무처에서는 여성 채용 제한 철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어떻게 해소할까=여고남저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카트린 뮐러 발레는 매년 치르는 국제학업성취도(PISA) 시험에서 거의 모든 국가의 여학생들 학력이 남학생들을 앞지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분석하는 남학생 학습부진의 원인은 능력을 잘 발현하는 분야가 다르고,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게임에 상대적으로 더 몰두하는 남자 아이 성향 때문. 지난 2002년 뉴욕교육정보센터가 '학습부진상태의 남자아이들이 독서를 자주하고 잘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 사례를 들며 "남자아이들에게 어릴때부터 책을 읽혀 교양을 쌓아줘야 한다"고 여고남저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자유기고가 볼프강 틸케는 '난 남자란 말이예요'라는 번역서에서 "'람보', '슈퍼맨'의 환상에 젖어 있는 부모들의 비현실적인 기대가 아들들의 학습부진을 초래하고 있다"며 "어릴 때부터 남성교사와 아버지 교육의 비중을 늘려 남자 아이들의 올바른 남성상부터 확립해야 한다"고 또 다른 대안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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