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기미(1919)년 만세사건의 '공식 D데이'는 3월1일이 아니라 3월 8일이다. H아워는 12시 정오설과 1시설 양론. 집결장소는 '큰장'(서문시장)이었다. 장꾼들이 들끓는 '큰장'이라야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호응을 바랄 수 있었고, 또 다른 장터로 소문이 잘 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시간 시차의 양론이 있듯, '대구만세사건'은 자료마다 참여숫자, 모의날짜, 주동자의 이름과 직책, 심지어 D데이까지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 문제이다. 1934년에 나온 일제의 '고등경찰요사'와, 1957년 대구 3.1정신동지회 위원장이던 손인식(孫仁植. 내과의사)의 증언록, 그리고 1961년에 출간된 '영남출신 독립운동약전'이 그 예이다.
우선 손 위원장의 증언을 중심으로 각 설을 비교해보면 헷갈리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계성학교 교사('약전'엔 교감) 백남채와 제일교회 목사 이만집, 같은 교회 장로('요사'엔 목사) 김태연 등이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과 거사를 모의하기 시작한 날은 2월 25일('요사'는 24일)이었다.
거사일이 늦춰진 이유는 3월 5일('요사'엔 4일과 7일 두 번) 백남채와 홍주일(洪宙一) 남산교회 장로('요사'엔 대구천도교교구장,'약전'엔 교남학교 교장. 겸직?)가 일경에 예비검속 되었던 까닭이다. 학생수가 가장 많은 대구고보 학생들을 끌어들이는데 시일이 좀 걸린 탓도 있었다.
대구고보생의 동원책은 졸업 1년을 앞둔 3학년생이자 입학 2기생인 백기만(白基萬.뒷날 시인)과 동기생인 이상백(李相伯.학자.체육인)의 형이자 그 무렵 중앙학교 자퇴생인 이상화(李相和· 항일시인)였다고 한다.
백기만의 회고에는 이상화가 "자네가 고보생의 동원에 책임을 지겠다면 계성은 내가 연락할 수 있겠는데" 하기에, "책임지지"했다 함으로, 손인식의 증언과는 상충된다('요사'엔 4년생 허범과, 급장 신현욱, 3년생 백기만, 2년생 하윤실, 1년생 김수천 등이 학년별 주동자였다 함).
당시 대구고보생 가운데는 2기생 조헌영(趙憲泳.뒷날 제헌의원.납북), 김상열(金相悅.경북대 총장), 백기호(白基浩.대구인민당 간부.월북), 4기생 이효상(李孝祥.국회의장)과 권중휘(權重輝. 서울대 총장), 박영진(朴榮鎭.희곡작가.필명 朴露兒.월북) 등 뒷날의 유명인사들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전한다.
어쨋든 이날 참가학생수는 계성이 100여명, 성경학원이 20여명, 신명이 40여명('요사'엔 50명), 고보생이 250여명('요사'엔 200여명)이었고, 200여명의 일반인 등, 총 600여명이 시위대를 형성했다.
김태연의 선언문낭독에 이어, 이만집의 만세삼창('약전'에는 그 순서가 반대)을 신호로, 1천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만세를 연호하며 대구경찰서와 종로,중앙파출소,달성군청(현 '대백')까지 내달았다. 여기서 헌병,경찰,기마대,80연대의 군인들에 의해 심하게 구타당한 뒤, 백 수십 명('요사'는 157명, '약전'은 200여명)이 체포되었다.
그 뒤 4월 1일과 8일에 산발적인 시위와 '동정철시'도 있었다. 이상화의 막내 동생인 수렵가 이상오(李相旿)는 그의 유고집에서 자신이 대구고보 신입생으로 입학식을 끝낸 직후인 4월 1일 토요일 오후에 첫 시위를 벌였다고 50년대 말 주장했다.
2차 시위 날과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불과 40년 만에 이토록 증언이 상반되는 이유는 뭘까. 그러나 우리를 부끄럽게 한 것은 33인 중의 생존자로, 기념식 때마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대구연고인 이갑성이 3.1정신을 배반했던 최린(崔麟)이나 박희도(朴熙道)와 다름없는 '변절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점이다.
대구의 기미만세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뒷맛이 영 찜찜한 까닭도 이같은 위선이나 착오가 다른 곳에도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기우 때문일까. 또 인구비례로나 문화수준으로 보아, 타 도시는 물론 영덕,안동,상주 등 도내의 군·면지에 비해서도 대구의 시위양상이 상대적으로 '온순'했고, 희생자 또한 적었던 점이 마뜩찮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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