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입력 2006-02-21 11:50:10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점점 힘겨워진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제 먹을 것 제각각 타고 난다는 말로 위안 삼으며 자식을 낳고 길러왔다. 그러나 그 말은 무책임한 부모의 넋두리로 된 지 오래다.

자아실현 때문이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든 결혼과 관계없이 여성이 직장을 가지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된 지 오래다. 기혼여성 4명 중 3명이 일을 나가고 있다. 누군가가 아이를 돌봐주지 않으면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아이들을 적게 낳지만 너도 나도 "남보다는 더"가 안 되면 " 남들만큼이라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려고 하다보니 자녀 양육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둘이만 즐겁게 지내기로 약속하고 결혼하는 부부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아이는 정부가 볼 테니 마음놓고 낳으라"든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지역"을 정책 구호로 내걸었다. 아마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도 후보자들마다, 정당마다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세울 것이다.

지난 주 여성가족부에서 2006년도 주요업무계획으로 발표한 보육정책들에도 이런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것으로만 그쳤다면 좋았는데 "가격규제 예외시설을 허용하고 이에 대한 법규마련을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을 동시에 언급한 것이다. 한손으로는 보육의 공공성 확대를 통해 보육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화하고 한손으로는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2002년부터 음으로 양으로 보육료 자율화를 추구해온 세력들의 1차 승리라고 할까?

차별화된 고급보육서비스를 요구하는 수요층이 있고, 정부 보육료지원 안 받고 자기들 돈으로 질높은 서비스를 받겠다는데 왜 그것을 허용하지 않느냐는 것이 보육료 자율화 시설 허용의 첫째 이유이다. 또한 질높은 보육시설의 경쟁우위를 통해 전체 보육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보육의 공공성 확대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 해당되어야 하지, "내 아이만" "다른 아이와 달리 내 아이만 특별하게" 추구하는데 기여해서는 안 된다. 보육시설의 자율화는 보육시설을 서열화하며 보육비용을 높이는 데만 기여할 뿐이다.

이미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은 부모들이 부담하고 투자할 수 있는 사교육비의 차이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에게로 세습된다는 데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여기에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서열화된 보육서비스를 받게 한다는 것은 정부의 부처들이 앞장서서 사회양극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보육 서비스는 일반 상품과 달리 보육 서비스의 사용자가 유아라서 부모가 서비스 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격 자율화가 곧 서비스 질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내 아이만큼은 잘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욕망과 시설 대표자간의 불공정 담합이 결합한다면 일부시설의 보육료 자율화 허용이 특별활동비 추가와 인상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전반적 보육료 상승을 불러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미 비용이 자율화된 사립유치원의 경우, 서울지역이 2002년 대비 2004년의 유치원 학비가 21% 인상된 현실과 보육료를 자율화한 이후에 보육비용이 4배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학부모와 정부의 부담이 모두 늘어난 호주의 경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가격규제 예외시설 허용"이 정책화한다면 보육의 공공성 확대는 물 건너가고 보육재정을 확대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 될 뿐이다. 부모들의 실질적 양육부담이 줄지 않으면 공보육을 통한 출산율 높이기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경쟁적이며 양극화된 보육환경에 유아들을 노출함으로써 우리아이들의 유년 시절은 더욱 황폐화될 것이다.

아이들 키우기 좋은 나라는 꿈으로 그칠 것인가?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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