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글쓰기 중독

입력 2006-02-18 09:56:55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왜 한결같이 우울한 사람들인가'라고 물었다. 그 이후 낭만주의자들도 '창의적인 작품은 우울함에서 오는 공허함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글을 쏟아내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 어느 날 의식이 바뀔 정도로 위험한 발작을 일으켰다. 그 뒤 심한 조울증과 도박중독증에 시달렸으며, 무려 10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쪊글을 쓰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욕구를 의학적으로는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라고 하는 모양이다. 신경학자들은 뇌의 특정 부위에 변화가 생길 때 나타나는 이 증상의 원인을 측두엽 간질이나 조울증 등이라고 꼽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엘리스 플래허티가 지은 책 '하이퍼그라피아'(박영원 옮김, 휘슬러 펴냄)는 글쓰기와 관련된 인간의 뇌 현상을 깊이 있게 다뤄 화제를 모은다.

쪊다양한 임상 사례들을 바탕으로 하이퍼그라피아의 정체와 이 같은 뇌의 이상증세가 어떻게 '생산적인 글쓰기'로 이어지는가를 밝힌 이 책은 글쓰기의 동인을 뇌 구조에서 찾고 있어 재미있다. 엄청난 글을 썼던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스티븐 킹까지 다루고 있어 더욱 그렇다. 저자는 루이스 캐럴'플로베르'바이런'모파상'몰리에르'파스칼'페트라르카'단테 등의 유명 작가들도 측두엽 간질을 앓았다고 밝혔다.

쪊저자는 작가들 가운데 조울증에 걸린 사람의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10배, 시인은 무려 40배에 이른다며, 우울증에서 조울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생산적으로 글을 쓰게 한다는 견해를 폈다. 아울러 글쓰기 중독과는 반대로 킹을 예로 들면서 글을 못 써 고통에 빠지는 '작가의 블록 현상(writer's bloc)'을 조명하기도 했다.

쪊글쓰기 중독을 '한밤에 걸리는 질병'(포), '신성한 질병'(히포크라테스)이라 했지만 이 병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글쓰기는 고통이며, 그 고통의 소산이 정신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젊은 세대들이 요즘 리포트나 자기소개서까지 이모션(emotion, 감정)과 아이콘(icon, 상)을 합친, 글 없이 소통하는 '이모티콘(emoticon)' 열풍으로 가는 현상 또한 어떻게 봐야 할 건지….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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