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지하철 결혼식'

입력 2006-02-17 11:49:04

남루한 차림새로 지하철에 탄 청춘 남녀가 객실 복도에 나란히 섰다. 그들은 승객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저희는 고아로 자라 남들처럼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릴 형편이 못 돼 저희가 처음 만난 이 지하철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하고 외친다. 그런 다음 준비된 결혼식 절차를 진행한다면 승객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 결혼식이 어느 지하철에서 오늘 일어난 일이라면.

◇신랑은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행복하게 살겠다고 맹세하고,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혼인서약을 한다. 이어서 두 사람은 서로 반지를 끼워 주고 따뜻한 포옹을 한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승객들은 비아냥거리거나 욕설을 퍼부으며 집어치우라고 할지 모른다. 결혼식이 이렇게 된다면 진짜 가난한 고아 출신 청춘 남녀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가짜 '지하철 결혼식' 이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인 감동의 결혼식이 연극으로 밝혀진 이후, 세상은 일정 부분 이렇게 더 삭막해진다. '지하철 결혼식'이 비난받아 마땅한 가장 결정적인 잘못이 이것이다. 인터넷과 TV 등 언론을 통해 보여진 '지하철 결혼식'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삭막해지기만 하는 세상에 모처럼 보는 감동이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이겨낸 숭고한 사랑의 승리에 감동했다. 그것이 배반당한 것이다. "잠시나마 따뜻한 마음을 되찾게 했다"는 극히 일부의 긍정적 반응도 있지만 그것은 좋은 연극을 보고 할 수 있는 감상일 뿐이다. 일부 언론의 미확인 보도를 탓하는 것도 본질이 아니다. 더구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네티즌과 이를 보고 감동의 댓글을 올린 네티즌들을 냄비 근성으로 꼬집는 것도 본질이 아닐 뿐더러 비판의 대상은 더욱 아니다.

◇'지하철 결혼식' 관계자들은 "사람들을 속이려는 불순한 목적으로 벌인 행동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이 사회의 고질병인 불신을 덧나게 한 것이다. 국민은 가짜에 너무 속고, 잃고 있다. 가짜에 사람의 착한 마음까지 빼앗기고 우롱당하는 일만큼은 있어서 안 된다. 이 사회가 불신의 덫에서 벗어날 때까지 연극은 연극이라고 고지했으면 좋겠다.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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