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이런 삶-정해왕 금융경제연구원장

입력 2006-02-17 10:06:13

"지역경제 살리려면 '벤처' 육성해야"

정해왕(丁海旺·59)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금융통'이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부터 은행과 대학, 연구소에서 금융의 실물과 이론 분야를 망라해 활동해 왔다. 그 세월이 38년이나 된다.

가장 큰 보람은 IMF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한 점이라고 했다. 1998년 7월부터 만 6년 동안 한국금융연구원(시중 은행들이 공동 출자, 설립한 기구)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금융 구조조정과 관련된 정부정책 수립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위원과 공적자금관리위원도 겸했다.

특히 외국에 비해 조기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외환위기 2, 3년 전부터 사전 대비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외환시장을 개방하면 이 같은 위기를 한 차례는 겪게 마련이기에 (부원장으로 있을 때인) 1994, 1995년부터 북유럽 국가들과 멕시코 등의 외환위기 사례들을 철저히 분석, 자료를 축적해 놓았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길로 들어선 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할 당시 대기업은 거의 없었고 현실적으로 안정된 직장이라고는 은행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졸업하던 해 한국외환은행에 입사, 81년까지 13년 정도 근무했다.

외환은행에 근무하면서 서울대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던 것을 계기로 박사학위를 위해 퇴직하고 곧바로 뉴욕주립대로 유학갔다. 이곳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캔터키주립대에서 경영대 조교수로 3년 정도 근무한 후 귀국해 대신증권 부설 대신경제연구소 대표이사로 취임, 1989년부터 4년간 연구소를 이끌었다. 이후 한국금융연구원으로 옮겨 부원장과 원장으로 11년간 활동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는 한국은행 소속 금융경제연구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재태크 비법은 다소 엉뚱했다. "경제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듣고 반대로 가면 된다"고 했는데, 그만큼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들렸다. 자신만 해도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릴 기회가 있었으나 '판단 미스'로 무위가 돼 버렸고 지금까지 서울 강남지역 근처에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천 출신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들이 모두 대구로 이사온 후 대구초등학교와 경북중을 거쳐 196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로 진학했다. 7남매 중 맏형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해창 변호사이고, 정해방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이 동생이다.

지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첨단 연구소와 대학을 적극 유치하는 등 경제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 후 기업 유치에 나서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특히 "앞으로는 경제가 대량생산보다는 소규모 생산체제로 많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벤처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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