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황혼의 꿈' 실버이민 붐

입력 2006-02-16 10:11:02

코리안 빌리지 형성 '제2의 인생'

한국의 실버세대들이 해외에서 '황혼의 꿈'을 찾고 있다.최근 들어 물가가 싸고 한국과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이 노후 생활 적격지로 찾는 곳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특히 필리핀의 바기오·앵겔레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테낭, 태국의 방콕·치앙마이에 살고 있는 현지 교민들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실버이민 문의전화를 받고 있다.(상세한 내용은 18일자에 실림)

◆올 들어 문의전화 폭주

2년 전부터 시작된 실버이민은 지난해 말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 서울주재 동남아 각국 관광청마다 실버이민을 문의하는 전화가 수십 통에 이르고 있다.동남아 각국의 현지 한인회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 실버이민자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에만 200여 가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필리핀 바기오 시의 경우 올 들어 한국인 20~30여 명이 골프 평생회원권을 사들였다. 이들은 대부분 장기체류를 생각하고 온 실버이민자들이다.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뒤 매달 연금 200만 원으로 필리핀 바기오에서 사는 정원영(62) 씨 부부는 지난해말 언론보도 이후 더욱 바빠졌다. 노후 정착지를 찾기위해 현지답사온 한국인들의 가이드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지난 2월 첫째주만 해도 안내한 사람이 26명이나 됐다. 3월이면 더 늘 것 같다는 것이 정씨의 이야기다.

말레이시아, 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말레이시아 관광청 한국사무소 주병일 차장은 최근 들어 문의전화가 2, 3배 정도 많아졌으며 현지답사도 늘었다고 했다. 오는 20일에도 은퇴교사 2명 등 모두 7명이 말레이시아에 며칠 동안 머물며 실상을 파악할 예정. 주 차장은 "말레이시아로 이민오는 한국인들이 지난 6개월 동안 두배가량 늘었으며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 집단거주지 형성

이 같은 실버이민 열풍은 10여년 전 일본의 모습과 닮았다. 일본 실버세대들은 본국보다 넉넉한 삶을 찾아 동남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저팬 클럽(Japan Club)'이라는 집단주거지를 형성할 정도가 됐다.

일본인들은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휴양도시의 요지만을 찾아 마을을 형성했다. 특히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집단행동까지 해 현지주민들과 주객이 바뀔 정도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2년 전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한 고이즈미 총리가 아로요 대통령을 만나 "일본 실버세대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잘 배려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정도.

반면 IMF를 겪은 지 9년째인 우리나라는 이제 연금생활자들이 고정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이런 실버이민 추세에 합류하고 있다.

동남아 여러 나라를 거쳐 필리핀 앵겔레스에 정착한 전웅기(58) 씨는 "앞으로 7, 8년 정도 지나면 한국도 일본처럼 '코리안 빌리지(Korean Village)'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지 이민자들이 꼽는 동남아에서의 노후생활 이점은 △물가가 싸며 △한국과 거리가 가깝고 △기후가 항상 따뜻해 건강에 좋으며 △레저 시설이 잘돼 값싸게 골프, 승마 등을 즐길 수 있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지 생활을 사전조사하고 자녀들과 충분히 상의한 뒤 결정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바기오·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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