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설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서양인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우리 마음의 결이 녹아있는 신화가 있다. 신화란 무엇일까. 저자는 신화를 '오래된 인류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오래된 인류의 마음을,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마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다.
저자는 우리 신화에서 서른 가지 수수께끼를 찾아 답하는 형식으로 독자들을 신화의 길로 안내한다. 신화는 인류의 공통된 무의식인 만큼 우리 신화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신화, 러시아 인근의 에벤키족의 신화, 중국 한 작은 부족의 신화로 뻗어나가며 닮은꼴 신화를 찾아나간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신화에 집착하지 않고 세계 각국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신화는 민담, 설화, 구전민요 등과도 닿아 있어, 우리가 잘 아는 '나무꾼과 선녀', '단군 이야기', '박혁거세의 건국신화' 등의 이야기 속에서도 신화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항상 날개옷을 꺼내주는 바람에 선녀를 떠나보내고 지상에 홀로 남은 나무꾼이 슬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행복한 결말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결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본래 신화였으며 우리가 아는 상당수의 전설이나 민담이 신화의 변형이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신화 속의 여신들도 제자리를 찾아주고 있다. 우리 신화에는 여신들도 많이 등장한다. 제주도 선문대할망, 마고할미, 노고할미 등 거대한 몸집으로 세상을 창조했던 이 여신들은 한때 주인공이었지만 남성신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산신으로, 때로는 마귀로 떨어지는 운명을 겪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단군 신화는 남아있지만 똑같이 부족을 다스렸던 마고할미의 신화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여신들은 남성 신에게 복종하거나 스스로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신화 속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줄을 다루고 있는 부분도 흥미롭다. 무가와 전설, 민담 속에는 수없이 많은 줄이 등장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의 생명을 살리는 줄이다. '나무꾼과 선녀'에서는 두레박줄로, '천지왕본풀이'에서는 박넝쿨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등장하는 동아줄로 나타나는 이 줄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탯줄'을 상징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줄이 끊어지고 만다. 세계 곳곳에 있는 '천지단절신화'인데, 신화는 하나같이 인간들의 소비와 권력욕망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끝없는 욕망은 욕망하는 자의 죽음을 낳았고 하늘로 이어지는 신성한 줄은 끊어지고 만다는 해석은, 늘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우리에게도 교훈을 던져준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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