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도 블록버스터 '사극 전쟁'
동명성왕,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대조영….
방송3사가 고구려 영웅을 내세운 블록버스터 사극 전쟁에 돌입한다. 연기파 주연진과 베테랑 제작진의 윤곽이 속속 드러나면서 올 사극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될지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르면 4월 말부터 방영되는 블록버스터 사극들은 짜맞춘 듯 하나같이 고구려사를 조명한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체가 되면서 역사 속에 묻혀버린 고구려가 중심무대다. 고구려의 탄생, 전성기, 말기, 고구려의 후예들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대륙으로 향한 웅장한 기상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고구려의 재발견이라는 의미도 뚜렷이 부각된다.
◇사극의 중심 '고구려'=고구려 건국시조 동명성왕(BC 37~BC 19)의 일대기를 다루는 MBC '삼한지-주몽'편은 '신돈' 후속으로 4월 말이나 5월 초 전파를 탄다. 주몽의 일대기와 함께 고구려 건국과정을 통해서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영웅들을 담아낸다.
60부작에 총 제작비 300억 원이 투입된다. 주몽 역에는 송일국, 주몽의 두 번째 부인으로 지략이 뛰어난 온조와 비류의 어머니 소서노 역에 한혜진이 캐스팅됐다. 주몽의 전처와 후처 간의 갈등, 그들의 소생들이 빚어내는 갈등에 서사성이 더해지면서 드라마틱한 가족사적 이야기가 전개된다.
5월 말 방영예정인 SBS '연개소문'은 당의 100만 대군을 물리치고 항복문서를 받아낸 연개소문(?~665)의 일대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연개소문은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정권을 장악하고 당과 맞선 고구려의 마지막 명장이자 정치가다. 그렇다보니 방대한 전쟁 장면 등 50부작 예정으로 제작비 350억 원이 들어간다. '야인시대' 이환경 작가가 극본을 맡으며 사극스타 유동근·전인화 부부가 주연으로 나선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태왕사신기'는 광개토대왕(담덕, 375~413) 역에 배용준이 일찌감치 확정된 데 이어 최민수, 정진영, 문소리 등 호화스타들이 주요 배역에 캐스팅됐다. 배용준은 건국신화를 판타지 형식으로 다룰 극 초반에서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역까지 1인3역을 맡는다. 만주정벌로 영토를 넓혔던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는 24부작으로 제작된다.
8월 방송예정인 KBS '대조영'은 국내 최초로 잊힌 역사인 발해를 TV드라마로 다룬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발해의 시조인 고왕 대조영(663?~719)은 고구려 멸망 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 발해를 건국했다. 제작진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발해의 영광을 올 중국 로케로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왜 고구려 드라마인가=그동안 역사 드라마의 주된 배경은 조선, 고려시대였다. 지난해 통일신라시대가 배경인 '해신'을 거쳐 삼국시대 '서동요'까지 왔다. 그리고 드디어 기원전까지 내려왔다.
화제를 모았던 '대장금', '다모' 등 퓨전 사극이 멜로와 개인사에 치중했다면 올해 사극은 광대한 스케일의 전쟁사극, 남성 영웅 사극에 집중되고 있다. 하나같이 만주 벌판을 내달리며 왕권을 수립하고 정복하며, 또한 전쟁을 다루는 이야기다.
이처럼 드라마가 과거로 향하는 이유는 현대물의 소재를 찾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 드라마의 수는 많아지고 있는데 시청자 수준은 갈수록 높아져 차별화된 현대물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비극적 러브스토리나 신데렐라 스토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제작진들은 소재 선택의 폭이 넓은 과거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특히 최근 1, 2년 사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부쩍 늘어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수익의 측면에서 100부작까지 가는 역사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에 견줘 뒤지지 않는다는 점도 들 수 있다. 300억~500억 원씩의 제작비를 투여하고도 오픈세트장을 테마파크 등으로 활용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투자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대로 날아가 신선한 인물을 재조명하고 지평을 확대, 역사적 의미를 던져주면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시도가 시청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