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발표된 수도권 7개 대학의 2008학년도 대입전형 요강의 골격은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의 감소와 논술·심층면접과 같은 대학별 고사 비중의 확대로 요약된다. 대학별 고사의 비중을 10~20%까지 높이겠다는 대학들의 입장은 2008학년도 뿐만 아니라 당장 2007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입생 선발의 중심 축을 수능이나 내신이 아닌 대학별 고사로 옮기겠다는 의지와 함께 대학별 고사의 변별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셈이기도 한 것. 교육부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때문에 많은 예비 고2, 3학생들은 향후 입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대학들의 발표에 주목하면서 현재 출제되고 있는 대학별 고사 문제를 분석해 2007학년도와 2008학년도 이후의 출제 방향을 가늠하고 대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주요 대학의 논술과 심층면접 기출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본다.
[문제] 제시문[A]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제시문 [B]의 내용과 연관지어 논하시오.(400~500자)
[A] 속도는 고도로 정치적이다. 어떤 사람의 속도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지불되기 때문에, 그래서 자동차 중심의 교통시스템은 자동차에 의해 보행자와 자전거 탄 사람의 가던 길이 차단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계 속도를 넘어서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지 않고는 시간을 절약할 수 없다"고 일리치는 말한다. 영국에서 도로 건설은 자동차 운행자의 시간가치에 의해 정당화되어 왔다. 즉 자동차 운행자의 시간은 시간당 3만 원의 가치로 환산되면서도, 자동차 도로들이 파괴하는 풍경의 시간에는 그와 같은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다.
자동차 도로 위에 있다면 당신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차창 밖 풍경의 섬세한 변화는 속도와 함께 사라진다. 바로 이것이 변화의 욕구에 호소하면서도 정작 그 반대의 것-단조로움-을 제공하는, 속도의 기만술의 하나이다. 패스트푸드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고 아우토반이나 비행장은 어디나 천편일률적이다. 속도는 멀고 가까움의 개념을 오염시키며, 그 결과 교통철학자 존 화이트레그가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된다. 관광지의 균일성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느림, 어떤 장소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긴 시간은 "시간상의 불리한 조건을 대가로 해서 장소의 고유성과 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제이 그리피스, '시계 밖의 시간'
[B]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언제나 시계를 가까이 두고, '시간이 자신을 쫓고 있는 듯' 살아가는 사회인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경제와 산업, 비즈니스의 시간이 현대인의 생활을 제어하는 주요한 틀이다. 그것은 경제인이나 비즈니스맨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노인과 젊은이를 가릴 것 없이 동일한 시간의 틀 속에 자신을 두고 성장과 효율성, 생산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사회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성장과 생산성을 축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이미 생산적인 시기가 지나버린 늙음은 쇠약의 프로세스로 여겨지며, 노약·노추·노쇠와 같은 말의 이미지가 보여주듯이 부정적이고 퇴행적이며, 가능하면 멀리하고 싶은 것, 회피하고 싶은 것으로 여겨진다. 와시다에 따르면, 이렇게 '어쩐지 싫은 생각이 드는' 노인을 어떻게든 사회의 틀 속에 무난하게 넣기 위해 사랑스럽고 귀여운 노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생산성이나 효율성 등과는 거리가 있는 유아나 아이들을 사랑스러움과 귀여움 속에 가두려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을 사회의 '현역' 이전 혹은 이후라는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로 강요한다.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 제시문으로 접근하기
상당히 당혹스러운 문제다. 제시문 [A]는 속도의 정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제시문 [B]에서 왜 노인과 아이의 귀여운 이미지가 나오고, 이게 어떻게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로 연결되는지, 이 문제가 과연 자연계 문제인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은 분명하다.
제시문 둘 다 흔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낯설다. 답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제시문에서 출발해 출제자가 묻는 의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제시문을 읽을 때는 우선 자연계열 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간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학적이어야 하고 이 같은 이해의 한계나 오류를 지적하는 쪽으로 풀어가야 한다. 자연과학적 시간이란 시계에 의해 측정되는 시간이고, 세계 표준으로 확립된 시간이다.
또 제시문 [A]와 [B]를 연결하는 키워드가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제시문 [A]에서 제기된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을 어떻게든 제시문 [B]와 연관시켜야 한다.
△ 제시문 [A]
첫째 단락의 요지는 속도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서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 체계는 예컨대 자동차의 빠른 주행을 위해 보행자가 파란 신호를 기다리거나 육교를 건너야 하는 체계다. 고속도로를 내기 위해 마을을 두 동강 내기도 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보행자는 물론 자전거나 오토바이도 고속도로에 올라갈 수 없다. 자동차의 속도 보장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속도가 가져다주는 시간 절약에 의해 정당화되어왔다. 그만큼 빨라진 효과가 비용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일일 생활권이 되어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쪽도 있기 마련이다. 천성산의 도롱뇽이나 고속철도 역에서 소외된 도시들, 없어진 마을들처럼. 그래서 속도는 정치적이다. 권력을 잡는 집단이 있으면 권력에서 배제된 집단이 있는 것처럼, 속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이라는 말은 둘째 단락에야 나온다. 둘째 단락은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쉽게 이해된다. 가령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로 여행할 때 바깥 풍경이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빨리 가는데도 운행 시간은 아주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변화의 욕구에 호소하는 속도는 우리에게 단조로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이'의 고유한 공간은 사라지고 출발지와 목적지만 남는다.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이란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있는 장소들의 독특함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봇짐을 메거나 달구지를 타거나 말을 타고 여행해 보라. 가는 도중 어떤 곳에서도 우리는 고유한 풍경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독특한 문화를 만난다. 조선 시대 한양에 과거 시험 보러 가던 선비들은 호랑이나 강도를 만나기도 했고 주막에 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길 가다 어두워지면 누군가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고, 그런 이야기들은 민담으로 설화로 전승되었다.
원래 '느리거나 빠른 정도'가 속도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이해이지만, 오늘날엔 전적으로 빠름과 연결된다. 이런 의미의 속도가 바로 장소의 고유한 의미를 앗아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끝부분에서 저자는 다음을 제안한다. 시간상 불리할지 몰라도 장소의 고유성과 문화를 보호하는 느리고도 긴 시간을 말이다.
(2) 제시문 [B]
첫째 단락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시계로 잰 시간 즉 과학적으로 규정된 시간이다. 이런 시간 덕분에 우리 모두는 노인이나 아이까지도, 동일한 시간의 틀 속에서, 속도 즉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우리는 빨리빨리 일을 해야 하고, 목적지에 빨리빨리 도착해야 한다. 취업 제한 연령 이전에 취업해야 한다. 의욕과 능력이 있어도 백수로 오래 지내면 일할 자질을 의심받는다. 개인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동일한 시간의 틀 속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장소의 고유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대목이다.
둘째 단락의 요지를 보자. 위의 기준에서 노인은 생산적인 시기를 지나온 쇠약의 단계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인은 우리로 하여금 어쩐지 싫고 멀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미지의 노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TV드라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노인들은 주책도 잘 떨고 애교도 잘 부린다.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아니 생산성에서 거의 배제된 노인은 귀엽기라도 하면 봐줄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를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인의 고유한 모습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둘째 단락에서 '장소의 고유성'과 연결되는 것은 바로 노인의 진정한 노인다움, 아이의 진정한 아이다움이다. 동일한 시간의 틀 속에서 속도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는 진정한 '~다움'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한 노인다움'이 일은 못하지만 귀여운 노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노인에게 지하철을 무료로 타게 해주기보다는, 실질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 시간의 바깥에서 물러나 있게 하기보다는, 그 느린 시간을 존중하고 그 시간에 맞추어 고유한 정체성을 지닐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아이는 단지 미래의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준비 과정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는 그런 마인드가 아니라, 아이 고유의 시간을 존중하고 누릴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한 마디로 동일한 속도에 모든 사람들을 편입시킨 현대 사회는 각 세대의 고유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사회는 시간에 배제된 사람들에게 기껏해야 허구적인 이미지만을 강요할 뿐이다.
[예시답안]
우리 모두는 시계로 잰 획일적인 시간에 쫓겨 '더 빠르게'를 선호하며 살아간다. 현대 사회에서 성장, 효율성, 생산성은 사회와 개인, 노인과 젊은이와 아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속도는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고속도로나 고속전철 덕분에 더 빨리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가는 도중의 여러 장소의 고유성은 사라진 채 단조로운 풍경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만국 공통의 단일한 시간의 틀 속에서 생산적인 시기가 지나간 노인은 부정적이고 퇴행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노인을 어떻게든 사회가 인정하는 시간의 틀 속으로 밀어 넣어 사랑스럽고 귀여운 노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제시문 [A]에서 말한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노인이 가진 고유의 시간을 인정하고, 속도를 쫓아가지 않는 느림의 시간을 통해서만 장소의 고유성의 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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