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초등4학년 아이 엄마입니다. 아들이 너무 만화를 좋아해서 걱정입니다. 만화에 대해 잘 몰라서 안 좋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조금도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잘못 키운 책임이 크지만 지금이라도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답 : 흔히 만화를 제9의 예술 또는 선으로 표현하는 문학이라고 합니다. 만화는 그림과 글의 결합, 다시 말해 말과 이미지의 지속적인 결합이라는 특이한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만화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적용 범위와 유연성 면에서 어떤 장르도 따를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자녀를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만화의 특성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만화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화의 그림은 생략과 변형을 특징으로 합니다. 착한 사람은 더욱 착하게, 멍청한 사람은 더욱 멍청하게, 악인은 철저하게 악인으로 묘사됩니다. 명랑 만화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크게 부각되고, 순정 만화의 여자 주인공의 몸은 특별하게 길고 날씬하며, 스포츠 만화에서는 튼튼한 어깨와 넓은 가슴이 두드러집니다. 빠른 속도를 나타낼 때는 긴장되고 팽팽한 직선이, 느린 속도에는 곡선이 사용됩니다. 만화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한 어느 학자는 "만화는 대상이 가진 형태의 자유로운 변형과 고정되어 있는 사물들의 의미를 은유와 제유로 변화시키며, 상식과 고정 관념의 일반적인 법칙을 깨뜨려야 만화다워진다"라고 했습니다.
만화 속의 세계는 실제보다 단순합니다. 단순성은 만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미국의 어느 만화 연구가는 "쾌락, 권력, 사랑, 정의, 자기표현, 자기 보존, 위신, 부, 권태로부터의 도피, 복수 등이 연재만화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목표다"라고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만화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만화는 오래 전부터 문화적 침략의 첨병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사가 만화영화 시리즈로 수십억 달러를 벌고 있는 사례나, '드래곤 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일본 만화가 우리 청소년들에게 베스트셀러가 된 사실 등이 그 점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방학을 맞아 지금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만화를 접하고 있을 것입니다. 만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름의 장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적 추세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로지 시청각적인 것만 추구하는데 대한 반성은 꼭 필요합니다. 아사 직전에 있는 아프리카 난민의 모습을 처음 볼 때는 엄청난 충격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비슷한 장면을 계속 보게 되면 감각이 둔해지고 무덤덤해집니다. 폭력과 살인을 다룬 영화를 계속 보게 되면 실제로 일어난 폭력과 살인사건을 별 충격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비슷한 장면을 계속 봄으로써 신선함과 충격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이미지 중독'이라 부릅니다. 이런 점이 만화나 TV 같은 영상매체의 역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영상과 소리가 중시되는 시대라 할지라도 문자의 중요성은 여전합니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예술가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미하여 보다 나은 현실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터무니없는 허구의 영상 매체가 실제의 현실적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만화나 영화에서 본 내용을 별 여과과정 없이 현실의 삶에 적용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일방적인 이미지를 계속 접하다 보면 이미지 중독 현상이 일어나 허구가 현실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청소년 범죄의 증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범죄도 그 근저에는 영상 매체 등을 통한 이미지 중독이 그 주된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간교육은 고뇌하고 고통하는 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현대에서는 만일 자녀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학교는 좋은 학교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엔 이런 상황이 척도가 된 경우는 없었다. 부모란 자녀가 자기들만큼은 (또는 그 이상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모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의 교육을 자녀들에게 받게 하고 있다. 고뇌하고 고통하는 능력이란 전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뇌나 고통이란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L. 비트겐슈타인의 말입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오늘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먹고, 입고, 자는 일에 있어서 고통을 덜 받게 해 주려고 합니다. 문제는 잘해주는 정도가 지나치면 마땅히 참고 인내해야 하는 일에서 그렇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일상생활에서는 지나치게 너그러우면서 학교 성적이나 진학과 관련된 공부 문제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인내와 고통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다소 부족하다고 느낄 때, 정신은 더욱 성숙하고 깊이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포만감을 주체할 수 없는 아이에게 곧바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라고 강요하는 것은 배가 불러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백 미터 달리기를 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화가 나쁜 것이 아니고 안락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일관된 원칙 없이 무조건 잘해주려고 하다 보니 심약한 아이들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고뇌와 고통, 인내'의 미덕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대북 확성기 중단했더니…북한도 대남 소음 방송 껐다
[앤서니 헤가티의 범죄 심리-인사이드 아웃] 대구 청년들을 파킨슨병에서 구할 '코카인'?
정세균, 이재명 재판 문제 두고 "헌법 84조는 대통령 직무 전념 취지, 국민들 '李=형사피고인' 알고도 선택"
'불법 정치자금 논란' 김민석 "사건 담당 검사, 증인으로 불러도 좋다"
[야고부-석민] 빚 갚으면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