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살리자, 지역을 살리자-(8)유럽대학은 혁신중

입력 2006-01-26 10:09:35

'市場이 원하면' 異種학문도 합쳐 한 학과로

"동종(洞種) 결합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종(異種)을 연결해 변화를 꾀합니다."

혁신은 진행 중이었다. 북유럽의 대학에는 시장 수요와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변화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었다. 수요 없는 학과는 없애고 유사학과가 아닌 이종학과를 합쳐 신종 학문을 만들어냈다. 학생은 기업체 현장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졸업이 가능했고 산업체 인력에다 초보 연구자로서 1인3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업은 대학 연구소에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돈을 댔다.

지난 16일부터 열흘간 독일 아헨공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핀란드 울루대학을 취재하면서 유럽의 선진 대학들은 일찌감치 지역경제를 견인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대학의 한박자 빠른 변화는 지역발전의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과감히 버리고 창조해라.

2년 전 네덜란드 델프트공대(TU Delft)는 지리정보공학과(Geodata engineering)를 없앴다. 땅보다 물이 높아 '물전쟁'을 치렀던 네덜란드에서 이 학과의 인기는 한때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물전쟁에서 승리한 후 15명 남짓했던 학과 교수들은 몇 년 동안 기업체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했다. 대학은 과감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시장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그 학과 교수들과 건물은 지금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이 대학 혁신연구소 버그(Berg) 박사는 "모른다. 타 대학에 갔거나 다른 과에 흡수됐을 것이다. 건물은 정부출자 연구소에 팔았다"고 했다.

3년 전 독일 아헨공대(RWTH Aachen University)는 인기 상종가를 달리는 IT, BT, NT 등의 실용 학문을 경영학, 철학, 사회학 등 기존의 학문과 섞어 신(新)학문을 창조했다. '항공기동력(MOBILITY)과 수송(TRANSPORT)'이라는 응용 학문을 자연과학부, 기계공학부, 전자공학부, 의학부에 적용하는 등 6개 학문을 9개 단과대학(faculty)과 결합한 '매트릭스' 학제를 완성했다.(표 참조)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을 만들고 싶었다는 아헨공대는 이미 80년대 초부터 학과 재편성을 시작했다. "'혁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문과의 결합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 스테판 다흠(Stephan Dahm) 기술이전 및 연구자금지원부 관계자는 "별개의 문화(culture)를 희석해 응용하고 결합하면 창조가 피어난다. 학문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독일의 한 일간지 '캐피탈'과 '한델스블라트'가 아헨공대를 최우수 대학으로 꼽은 것도 시대가 요구하는 학문을 발빠르게 만들어 갔기 때문이다.

■시장에 맞춘 현실감각을 익혀라

"학생수를 채우지 못해도 교수는 살아 남고, 대학 졸업자는 보통 기업에서 재교육한다"는 한국 현실을 설명하자 핀란드 울루대학(OULU University) 라흐코넨(Tino Rahkonen) 부학장은 슬며시 웃었다."우리도 학생이 줄고 연구기금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신임교수는 5년 계약, 연구성과와 과제현황을 분석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죠."

울루대학 교수들은 연간 3개 이상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5~15명 정도의 석·박사 연구원을 둔 실험실이 유지되는 손익분기점이다. 이보다 적으면 자연 도태된다.

"학생들은 기술현장 인턴이자 대학의 초보연구자로 '이중생활'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선 3개월 간의 인턴생활이 필수죠. 대학의 역할은 그 현장 내용을 검증, 보강해주는 것 아닐까요?"

핀란드는 평균 실업률 8%의 고실업사회지만 청년실업률은 2.8%대다. 각 대학이 수업과정에서 현장을 익히고 졸업 후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필드(field)감각을 살려주니 학생 모두 고급인력이 된다. 2% 정도가 마찰실업임을 감안하면 청년실업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헨공대는 석사학위를 취득하려면 20주 간의 인턴십, 6주간의 단독 연구프로그램을 요구한다.(유럽은 보통 학부3년, 석사2년의 5년제 과정이다) 학생은 이 기간 기업의 요구를 피부로 체화한다. 또 독자적인 '과제선정→실험→결과산출'로 강력한 초보 연구자가 거듭난다.

아헨공대 전자공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보르네펠트(Gero BorneFelt) 씨는 "시장을 염두에 둔 초보연구자로 학생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헨공대의 강력한 무기"라며 "아헨공대의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기업들이 요구하는 5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프로그램을 주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원 재교육이란 개념은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 지난 16일 독일 아헨공대 내에 있는 한 섬유연구소. 15년 전부터 대학과 기업이 공동개발하고 있는 이 섬유기계 앞에서 학생들이 식사도 거른 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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