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단에는 어떤 소설가들이 있을까. 그들의 작품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대구의 작가들과 작품을 한눈에 만날 수 있는 '대구소설' 제12집이 도서출판 맑은책에서 출간됐다. 대구소설가협회의 한 해 결산이기도 한 이 소설집에서 독자들은 대구소설의 현주소를 읽고 대구소설의 내일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출판기념회 때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누던 걸쭉한 입담이나 술잔을 응시하며 일순 사색에 잠기던 고즈넉한 모습처럼 작가마다 작품마다 다양한 삶의 편린들을 그리며 대구소설의 자존심을 담았다.
우선 중진들의 작품으로는 작가 이수남이 겨울 한라산으로 등반을 떠나는 밤배에서 잠든 한 사내를 보고 허망한 아버지와의 아픈 과거를 되씹는 '아버지의 귀'를, 이순우는 장애인 아내와 결혼한 주인공이 낚시터에서 20여년 전 첫사랑을 만난다는 '개살구'를 발표했다. 그리고 송일호는 현대부부의 생리를 그린 '애욕'을, 박하식은 '무섬마을'을 선보이며 대구의 중진들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창작활동이 한창 때인 40대 작가로는 엄창석이 대구역 뒤 재개발 지구에서 문방구를 하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쓴 '고질라 씨 문방구'를, 박상훈이 질퍽한 입담으로 부패된 사회를 통렬히 질타하는 '꿈에서 깨어'를, 박희섭이 21세기 소돔에 못지 않은 파단적 행적을 그린 '소돔의 나날'을 게재했다.
박이채의 '철길 위의 목마'와 오철환의 '업(業)' 등도 대구소설의 가능성 열기에 동참했다.여성작가들의 작품도 두드러졌다. 아이를 사고로 잃은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김경원의 '종이접기'는 현재 진행형의 문장으로 시종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남성적인 터치로 거울에 얽힌 마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박은삼의 '마술거울', 나고야로 밀월여행을 가려다 비행기를 놓쳐버리고 퀵서비스 사내의 오토바이를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장정옥의 '시간을 달리는 목마' 등은 대구소설을 엮고 있는 단단한 거멀못이다.
신진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현대문학 추천을 받은 양유정은 '지평리'를, 문학세계 신인상을 받은 김형준은 '만남이란 것'을, 대구문학 신인상을 받은 박명호는 '망(忘)'을 통해 저마다 뱃심있는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현진건 특집' 코너도 마련했다. 1923년 '시대평론'지에 발표되기는 했으나 현진건 전집에 누락돼 미발굴작이라고 해도 좋을 단편 '사공(船人)'과 경북대 이주형 교수의 '현진건 단편소설의 변화와 성취', 작가 송일호의 '현진건의 생애와 우리의 사명' 그리고 작가연보를 실었다.
권희경 대구소설가협회장은 발간사 '영원한 이야기꾼들의 작은 소망'을 통해 "그저 쓰고 싶다는 조그만 욕구에 의지해 인간사의 한 모퉁이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꾼들의 작업이 훗날 대구 소설문학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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