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일하는 여성에게 출산휴가를

입력 2006-01-24 11:51:22

2002년 여성의 합계출산율 1.17 쇼크 이후 저출산은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저출산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출산이 고령화와 결부하여 미래 우리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사람의 일이나 사회적 현상이 그런 것처럼 저출산도 재앙의 단초가 될지, 축복의 씨앗이 될지는 그 자체보다 그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관점과 입장에 좌우된다. 물론 '우리'가 실제 누구냐에 따라 정부 부처를 비롯하여 각종 연구소, 기업, 사회 단체와 여성 단체들의 대책이 크게 또는 작게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저런 복잡한 것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저출산은 어쨌든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고 적게 낳는다는 것 아닌가? 사실 아이를 낳고 안 낳고 적게 낳고 많이 낳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개인들에게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고 강제할 수 없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며, 나름대로 주어진 사회 환경 속에서 자기 목적을 실현하는 합리적 판단의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출산이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본다면 최소한 "왜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고 적게 낳는가?"하는 이유를 여성들로부터 잘 들어서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적정 수의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적, 개인적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모성 보호는 이런 여건들 중에 가장 기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출산이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에서 전체 여성들에 대한 모성 보호는 고사하고 사회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들조차 출산휴가를 제대로 쓰는 여성들의 수는 너무나 적다. 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이후 수 차례에 걸친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의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는 중소기업의 여성 노동자들까지도 90일 출산휴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일부에 불과하다. 여성 노동자의 70%를 이루는 비정규직은 출산휴가 중 계약 기간 만료에 대한 대책이 없어 90일 유급 출산휴가는 여전히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보험 설계사나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 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대상자가 아니므로 해당 사항이 없다. 나도 자동차 보험 설계사를 할 때 둘째를 낳았는데, 함께 임신했던 수납 담당 여직원은 당시 일요일 포함해서 70일간의 산전후 휴가를 가졌는데 나는 몸이 안 좋고 수술도 해서 20일 이상을 입원해 있었는데 수술에서 깨자마자 전화로 고객의 보험 처리를 해 줬어야 했다. "산후에 팔다리를 잘못 쓰면 평생 골병이라는데 나는 나이 들면 다리보다 팔이 먼저 아플 거야" 푸념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벌써부터 비 오고 날 흐리면 팔이 무척 아프다.

고용보험에서 산전후 급여를 주니까 사회 경제적 활동을 해도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면 출산휴가는 할 수가 없다. 우리 어머니들이 수십 년 전에 밭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낳고, 아침 먹고 아이 낳은 사람이 그날 저녁부터 밥하고 그 다음날 밭에 나가 일하셨다는데 농촌에서는 이것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2002년부터 출산한 여성 농민에게는 30일간 농가 도우미를 사용할 수 있도록 70여 만 원을 지원하는데 이 돈으론 30일도 쉴 수 없는 실정이다. 요즘은 겨울에도 비닐하우스를 하니까 애 낳고 삼칠 간신히 보내고 갓난아기까지 비닐하우스에 데리고 가서 일해야 한다. 축산을 하는 농가에서는 임신한 여성 농민이 송아지 낳는 것을 보조하다가 배를 걷어차여 유산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다.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그 중에서 피고용인인 여성 노동자들이 65% 조금 넘고 19%가 여성 농민을 포함한 무급 가족 종사자이며, 자영업자가 16% 조금 못 미치는데 이들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들 평균 임금 수준에 왔다 갔다 하는 영세업자들이다. 이들 역시 출산휴가는 꿈도 못 꾼다. 우리가 정말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다면 우선 사회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출산휴가부터 확실하게 보장해야 하지 않나? 나아가 모든 여성들이 최소한 산전후 3개월만이라도 생계 걱정 없이 산후 조리와 아이 돌보기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고역으로 느끼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영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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