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편지-배치기준표 불상사

입력 2006-01-24 11:52:28

대학들의 논술고사와 면접이 서서히 끝나고 합격자 발표가 잇따르면서 2006학년도 대학입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수능시험 이후부터 정시모집 원서 접수 때까지 썼던 기사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저런 분석과 예측 가운데 잘못된 것은 없는지, 당시와 비교해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인지, 올해 추세에 비춰 내년 입시는 어떻게 전개될지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대학입시에는 워낙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늘 되짚고 반성할 일이 생기지만 매년 빼놓지 않고 가슴에 낙인을 찍는 것이 있다. 바로 배치기준표다. 그 많은 변수들을 제쳐 두고 오로지 수능 점수 하나만으로 대학 지원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의도 자체부터 엇나가 있으니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게다.

대학 지원의 기준이 학력고사라는 단일한 잣대이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수능 점수에 내신 성적에, 수시와 정시에, 복수지원과 분할 모집에, 대학별 고사까지 어지럽게 얽혀 있는 현재의 입시 체제에서는 합리성을 주장할 근거가 박약하다.

특히 수능 총점 도수 분포가 발표되지 않은 몇 년 전부터는 수험생들의 성적 분포에 대한 입시기관들의 예측부터 제각각이다 보니 기관별 지원 가능 점수 차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두고 일이십 점씩 차이 나는 건 다반사다. '맞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냐'는 비판이 당연해 보인다.

제작 과정에 아무리 객관적인 자료를 반영했다고 해도, 지원자들이 다른 기관의 배치기준표를 따라가 버리면 허무맹랑한 기준이 되기 십상이다. 올해 대구진학지도협의회가 발표한 배치기준표가 그런 경우를 당한 듯하다.

경북대 합격자 발표 결과 대구 수험생의 점유율이 지난해 71.1%에서 58.2%로 크게 떨어진 반면 부산·울산·경남은 20.3%로 대폭 올랐다. 고3 재학생 점유율이 크게 줄고 재수생이 늘었다. 이는 대구진협의 배치기준표를 중심으로 지원한 대구의 재학생들이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대구진협 관계자는 답답해했다. 수 년 동안의 입시 결과와 대구 수험생들의 점수 분포 등을 치밀하게 분석해 만들었는데 부산·울산·경남지역 수험생들이나 재수생들이 기준으로 삼은 학원들의 배치기준표 점수가 너무 높은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믿고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대구의 재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이런 해명이 통할 리 없다. 배치기준표가 빚어낸 안타까운 불상사다.

문제는 해마다 크고 작게 되풀이되는 이런 불상사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란 점이다. 내년은 물론 내신 성적과 대학별 고사 비중이 대폭 강화된다는 2008학년도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배치기준표가 쏟아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책임은 대학 서열화를 막겠다며 지원 기준과 관련된 핵심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버티는 교육 당국에 있다. 대입 제도 개선이라는 공염불만 할 게 아니라 기관마다 제각각인 배치기준표들을 들여다보며 3년 공부 아니 12년 공부를 어디에 걸지 고민해야 하는 이 참담한 현실부터 직시할 일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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