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명상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이끌고 있는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은 저서 '화(Anger)'에서 말했다.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 스님은 화를 다스릴 때 미움'시기'절망 등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며,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우리 한국인은 유독 '화'를 지혜롭게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 같다. 잇따르는 '홧김에'식 사건들을 봐도 그러하다. 최근의 세칭 '발바리' 사건은 그 좋은 예다. 택시 기사였던 그가 모욕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승객의 집을 뒤따라간 것이 희대의 연쇄 성범죄의 시작이었다. 두어 달 전 서울 응암동 주택가에서 차량 20여 대를 불지른 20대 남자도 '홧김에'가 문제였다.
◇ 분노의 무절제한 표출이 '홧김에'식 사건이라면 안으로만 삭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화병'이다. 가부장적 사회구조 아래 며느리'아내'어머니 등 1인 3역, 4역을 맡아야 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미국 정신의학회가 "한국 문화 특유의 분노증후군"이란 설명과 함께 1995년엔 '화병(Hwa-byung)'이란 단어를 정신의학 용어로 공식 등록까지 했을까.
◇ '홧김에'식 사고는 이혼 문제서도 예외가 아니다. 충동적 분노를 이기지 못한, 성급한 이혼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이혼 풍속도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 작년 3월, 합의 이혼 신청 부부에게 1주일간 이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거나 상담을 받게 하는 이혼숙려(熟慮)제 도입 후 이혼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12월 말까지 5천958건의 합의 이혼 사건 중 1천27건이 취하됐다고 밝혔다. 2004년의 취하율 9.99%의 두 배인 17.2%다.
◇ 이 같은 성과에 고무된 법원 측은 현재 1주인 숙려 기간을 오는 3월부터 3주로 늘릴 방침이다. 물론 이에 대해 "개인의 행복권 추구 규제 및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을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사소한 갈등에서 비롯된 충동 이혼 등으로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회복 가능한 부부 관계는 다시 회복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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