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프로젝트 누가 실패라고 하나"
경제 관료로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 추진에도 관여했던 장욱현(張彧鉉·52) 중소기업청 기업성장지원국장을 만나 대구 섬유산업과 중소기업이 가야할 길에 대해 들어봤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실패작?="밀라노 프로젝트는 부산 신발, 창원 기계, 광주 광산업과 함께 산업자원부가 처음으로 시작한 대규모 지역사업입니다. 클러스터가 갖춰져 있는 지역의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자는 취지였죠.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모태라고나 할까요."
섬유패션산업과장으로 곁에서 지켜봤던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한 장 국장의 애착이 남다르다. 영주 출신으로 경북대를 졸업한 그에게 대구가 고향과 다름없기 때문일까.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 많은 사람이 실패라고 하지요.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실패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KDI가 실패라고 한 것은 기업체 수가 줄고 대구에서 차지하는 섬유산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등 외형만 봤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만약 밀라노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대구 섬유산업은 급격히 무너져 지금은 형체도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전에 대구 직물의 수출가는 야드당 1달러도 채 안됐습니다. 지금은 10달러가 넘는 직물이 많아요. 밀라노 프로젝트로 인프라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대구 섬유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섬유 인프라는 세계적=장 국장은 염색기술연구소에 대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적 자원. 세계적인 우수 기술자를 영입해야 하는데 문제는 돈이다. 염색업계는 국가가 만들어 준 염색기술연구소이므로 공짜로 시설과 인력을 이용하려 한다. 그래서 염색기술연구소는 우수 인력을 영입할 여력이 없다.
"대구업체들, 반성 많이 해야 합니다. 공짜라는 생각 버리지 않으면 안 돼요. 업체 스스로 연구시설과 연구원을 확보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잖아요. 조금 비싸다 싶어도 비용을 지불하고 공동의 재산인 시설과 인력을 이용해야지요. 그래야 우수인력을 확보할 수 있죠. 염색업계가 인식을 바꿔야 대구 섬유에 희망이 있습니다."
◆대구섬유, 재도약 가능하다=장 국장은 대구가 40~50년 이상 쌓아 온 생산기술을 높이 샀다. 중국이 따라오려면 어림도 없다는 것.
관건은 '변신'이다. 그는 변신 방안으로 먼저 'IT와 섬유의 결합'을 들었다. IT를 섬유산업에 제대로 접목시키면 중국과 기술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것. 마침 정부도 섬유산업에 대한 하드웨어 지원은 더 이상 하지 않고 IT관련 소프트웨어와 기술 개발에 지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다른 변신 방안은 섬유와 문화의 접목이다. 파리의 넥타이가 국산보다 10배, 20배 비싼 것은 '파리 이미지 값'이라는 것. 따라서 반만 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대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 대구 섬유의 재도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를 대구 섬유가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문제는 아이디어다. 한류와 대구 섬유를 제대로 결합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이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화산업, 지방에서도 가능하다=그는 고향 영주의 가능성도 '문화'에서 찾고 있다. 화엄종찰인 부석사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하다는 것. 부석사 선묘당에 얽힌 얘기를 들려줬다. 화엄종의 태두인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는 사랑을 이룰 수 없자 용이 돼 의상대사의 귀국을 돕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 같은 전설을 바탕으로 KBS역사스페셜에서 부석사를 조사한 결과 조사당 부처 밑에 석룡(石龍)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또 소수서원을 들며 "영주는 유학의 발상지로, 퇴계 선생도 소수서원 학적부에 올라 있다"고 했다. 여기다 인삼의 최초 재배지인 풍기의 인삼은 사포닌 함량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 최고의 품질이라고 자랑했다.
"일본에서는 선묘사상이 대단해요. 부석사 무량수전과 선묘각을 잘 홍보하고 여기에다 소수서원, 풍기인삼을 결합시키면 영주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키울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청 홈피를 자주 클릭하라=자금 인력 판로 수출 등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거의 다 맡다시피 하는 장 국장은 "이노비즈 벤처 소상공인 지원 시책이 100가지도 넘는다"면서 "중소기업 정책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을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깝단다. 그래서 그는 대구·경북 기업인을 만나면 중기청 홈페이지에 자주 접속하라고 버릇처럼 권한다. "지원 대상자의 30% 정도밖에 중소기업청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활용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어요."
대표적 정책으로 '내수기업의 수출기업화 사업'을 들었다. 수출을 원하는 기업에 카탈로그 제작을 지원하고, 바이어와 만날 때 통·번역을 해주며, L/C 개설 교육과 해외전시회 참여 지원 등 토털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
그가 수출로 위기를 극복한 모범 사례로 자주 드는 것이 대구의 귀금속가공 업체인 크라이스다.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금모으기 운동 때문에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된 크라이스는 외국으로 눈을 돌려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업체는 이미 1천만불 수출탑을 받았고, 지금은 2천만불 수출탑에 도전하고 있다. 수출로 구멍가게가 건실한 중소기업이 된 것이다.
올해 경기전망을 물어도 수출기업 예찬론이다. "올해 경기가 지표상으론 분명히 좋습니다. 그러나 양극화 때문에 내수 중심 중소기업은 별 재미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환율이 다소 문제이나 우리나라 수출 중소기업도 이제 환리스크를 바이어에게 전가하는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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