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배기 참 맛 보려면 여기로 오이소"…설 대목 맞은 '영천 장'

입력 2006-01-21 09:16:23

허옇고 길쭉한 몸뚱아리가 얼핏 거대한 포탄을 떠올리게 한다. 대충 봐도 150㎝는 넘어보인다. 상어 몸뚱아리라고 하니 그런 줄 알지 대가리며 지느러미가 모두 잘려나간 상어는 그저 앞뒤가 뭉툭한 타원체에 불과할 따름이다. 무릇 바다의 왕자로 불리던 겁 없는 상어 한 마리가 어딘지도 모를 머나먼 바다에서 잡혀와 이처럼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하지만 얼추 60㎏이 넘는 저 고깃 덩어리는 영남 내륙에서 '돔배기'로 불린다. 차례상에 올라 사람들에게 절까지 받으니 마냥 애통해 할 일은 아닐 성 싶다. 쇠고기는 못 올려도, 돔배기는 빼놓을 수 없다고 했던가.

17일 영천 5일장에서 만난 한 70대 할아버지는 "좋은 돔배기를 사려고 새벽에 군위에서 출발했다"며 만족스런 미소로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2일과 7일은 영천 장날. 지난 17일이 5일장 열리는 날이었고, 설을 앞두고 22일과 27일 두차례 대목 장이 남아있다. 안동시장, 약령시장과 함께 영남 3대 시장으로 꼽히는 영천 장은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현 위치인 영천시 완산동에 자리잡은 것이 지난 1955년 5월 1일이었고, 앞서 조선 중말엽부터 남천변에 자리를 잡고 5일장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유명한 영천 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돔배기. 200여 곳이 넘는 점포 중 10% 가량이 돔배기를 취급한다. 요즘 같은 대목이면 최소한 영천 장에서만은 행색이 남루한 노점상이라고 허투루 대해선 안된다. 그 노점상이 돔배기를 판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새벽에 시작한 장이 짧은 겨울 해를 뒤로 하고 마감할 때 쯤이면 노점상 주머니에도 최소한 수백만 원은 들어앉아 있다. 멀리 울산에서도 새벽 바람을 마다않고 찾아오는 곳이 바로 영천 돔배기 시장이다.

돔배기에 대한 상식 한 토막. 돔배기는 원래 '토막고기'를 뜻하는 사투리에서 유래했단다. 지금은 상어 토막고기를 일컫는다. 돔배기는 크게 2 종류로 나뉜다. 초보라도 영천 장에 가서 "양제기 주이소"라고 하면 주인이 다시 한번 얼굴을 쳐다볼 것이다. 그만큼 양제기(귀상어 고기)는 돔배기 중에서도 특품으로 친다. 가격도 1㎏에 1만8천 원선에 이른다. 양제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노'라 불리는데, 상인들도 정확한 내력은 모르지만 일본어에서 온 듯 하다. 모노로 쓰이는 상어는 흔히 알고 있는 참상어 또는 청새리 종류. 1㎏에 1만2천 원선에 거래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돔배기를 팔고 있는 한 상인은 "명절 대목이면 영천 장에서 취급하는 돔배기만 하루 80t에 이를 정도"라며 "소매가로 치면 수억 원 어치가 거래되는 셈"이라고 했다. 최근엔 아예 '영천 돔배기'라는 브랜드 상품까지 등장해 규격화된 종이 상자에 깔끔하게 포장한 돔배기 상품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영천 장이 돔배기만 취급하는 어물전 일색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지난 2004년 말 무려 112억 여원을 들여 새롭게 단장한 '영천공설시장'은 면적이 3천500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아케이드상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두 6개 상가로 구성돼 있다. 1지구는 곡물류, 2지구는 수육, 3지구는 잡화, 4-1지구는 신발, 4-2지구는 의류, 4-3지구는 돔배기를 취급한다. 연결된 건물 옥상은 거대한 주차장으로 쓰인다. 영천시청 양국환 지역경제담당은 "평일 5천 여명, 장날엔 2만 여명이 영남 각지에서 몰려들 만큼 영천 장은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조만간 대도시 주부들에게 버스 등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재래시장 투어도 시작하겠다"고 했다.

어느 재래시장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영천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환한 웃음이다. 5만~10만 원이라는 적잖은 돈을 지불했지만 한 아름 가득 손에 쥔 돔배기가 넉넉한 덕분일 것이고, 모퉁이를 돌아가면 한 접시에 1만 원이면 푸짐하게 내오는 쇠고기 수육이 든든했을 것이고, 깜짝깜짝 놀라기는 해도 연신 '뻥'하는 소리와 함께 하얗게 쏟아져 나오는 튀밥이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리라. 사람 사는 내음이 그립다면 영천 장에 가보면 어떨까? 주체 못할 생기를 얻게 될 것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 : (위)영천장에는 돔배기뿐 아니라 웬만한 수산시장 못지 않게 다양한 생선류를 취급한다. (아래)돔배기로 거듭나기 위해 전기 톱으로 냉동된 상어 몸통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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