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집들은 꾀가 많다. 돌담은 억센 바닷바람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그 속에 들어 앉은 집들은 키높이를 한껏 낮춰 옹기종기하다. 어쩌면 서로를 꽉 붙잡아 의지하며 소금끼가 가득한 바닷바람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울진군 북면 나곡과 부구, 덕천리은 어촌이되 어촌이 아니다.
고포마을(14일자 13면) 아랫동네인 이 곳에는 마을마다 2, 3층 양옥 횟집 등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노래방, 술집들도 줄지어 있다. 바닷가 동네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고깃집들도 적잖다. 마을을 조금 더 기웃거려보면 유달리 젊은이들이 많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전광민 북면 총무담당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따른 현상이라고 했다. 2005년 말 북면 인구는 3천340세대 9천61명입니다. 1970년 1만1천28명으로 최고였지만 이농이어(離農離漁) 현상으로 1990년에는 7천540명까지 줄었다. 그러다 원전건설이 본격화된 1995년 9천583명으로 늘었고 그 뒤 10여년째 9천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 이름 덕에 부자됐다?
전 담당은 북면의 어촌이 부유한 마을이 된 데는 지명과 무관치 않다고 믿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부구리(富邱里)의 당초 이름은 마을 안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영구동(靈龜洞)이었다. 또 원전이 들어선 마을은 소금을 굽는 염전이 있다고 해 염전둑으로 불렀다. 일제 강점기엔 일본인 측량기사가 마을 이름을 한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여 염전둑의 염(鹽)자와 영구동의 구(龜)자를 언덕 구(邱)로 바꿔 염구동으로 불러오다 행정구역 개편때 흥부(興富)의 부자와 염구동의 구자를 합해 '부구'로 정했다 한다.
원전을 관리,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사택단지인 나곡리 만호동(萬戶洞)의 유래도 재미있다. 이 동네 황진수(60) 씨는 "현재 15만평 규모로 1천500여명의 한수원 직원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는 원전 사택은 조선시대 수군인 만호(萬戶)의 관아가 있었다는 곳인데 지명처럼 1만가구는 아니지만 어촌에선 보기 드물게 대규모 아파트촌이 들어서 있다"고 했다.
부구리가 부유한 마을이 된 것은 6기가 들어선 원전 덕이다. 지난해 한수원이 낸 주민세만도 100억원이 넘고 원전관련 업체 직원들과 그 가족들로 인해 식당과 술집 등도 성황이어서 경기부양효과가 톡톡하다. 또 하나의 특전은 한수원과 원전 지원금으로 조성된 각종 편의시설들.
인조잔디 축구장과 테니스장, 실내 배드민턴장, 36타석의 골프 연습장, 복지회관, 어린이집 등이 있으며 헬스장과 볼링장, 실내수영장까지 갖춘 스포츠 센터도 있다. 송재철 한수원 대외협력실장은 "올 4월 개장 목표로 발전소 부지 내에 조성하고 있는 6홀 규모의 골프장도 주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라고 했다.
◆개발 뒤에 가려진 슬픔들
하지만 반핵단체들은 전혀 다른 생각이다. 원전 건설로 인구가 늘고 경제적인 발전은 있어지만 뒤에 가려진 슬픔도 만만찮다는 것. 특히 원전 건설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이주민들은 아직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덕천리의 자연부락 퇴내와 덕금, 그리고 부구리의 염전둑은 원전건설로 인해 이미 사라졌다. 마분동도 2, 3년 후에 들어설 울진원전 7~10호기 예정 부지로 지정돼 주민들은 이주를 해야한다.
최경준(78) 씨는 "염전둑에는 원전 1, 2호기가 들어섰고, 염전둑과 퇴내의 경계인 도둑바위와 해송군락지에는 3, 4호기가 들어섰다. 또 퇴내의 섬바위골 냇가주변은 5, 6호기가, 덕금은 골프장 클럽하우스가 들어섰다"고 했다.
염전둑은 마을이름이 암시하듯 소금을 생산하던 곳으로 1930년대부터 6.25 전쟁이 나기 전까지 이뤄졌다.
염전둑에서는 바닷물 외에도 소금생산에 필요한 질 좋은 참흙과 땔감용 나무, 넓은 백사장 등을 갖추고 있어 여러 번 굽지 않아도 좋은 소금이 나왔다. 염전둑에서 생산된 소금은 미역 등 해산물과 함께 보부상과 등짐장수들에 의해 울진 북면 두천리 십이령 바지게 고개를 넘어 봉화, 안동 등 경북 북부 내륙지역으로 유통됐다.
장기수(85) 할아버지는 "해당화가 융단처럼 펼쳐진 백사장에서 소금 굽던 그 시절이 참 그리워. 하지만 어쩌겠어. 다 지난 일이야. 젊은 사람들은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원전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일자리가 생겨 좋다고들 하잖아. 그럼 됐지 뭐"라고 했다.
◆임란 항쟁지 덕천
신규 원전 부지로 지정된 마분동의 이름은 임진왜란 때 사람과 말이 많이 죽어 무덤이 됐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 구릉 일대는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마을 북쪽인 원전 후문 앞에 있는 계곡이 '분투골'인데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언륜 장군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후문 오른 쪽으로 장군의 묘가 있으며 매년 12월이면 북면 청년회가 배향제를 올리지만 이곳도 신규 원전 건설 예정 지역이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청년은 "김언륜 장군 묘역과 분투골은 기미년 3.1운동의 영동지역 확산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북면 4.13 흥부만세운동과 함께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자긍심인데 원전 건설로 헐리게 됐다"며 아쉬워 했다.
원전이 아니었다면 지금은 어떠했을까? 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어촌마을과 실향민의 아픔은 가려져 있지만 번듯하게 발전된 마을. 그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사진 : 울진 나곡리와 부구리는 여느 바닷마을과는 2, 3층 양옥 횟집 등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노래방, 술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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