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근대화 100년-(4)건축

입력 2006-01-20 10:04:28

영남 최초의 고딕 건축물'계산성당'

계명대 동산의료원(대구시 중구 동산동) 내에 있는 3개 동의 선교사 사택 중 챔니스관 건축이 시작(1910년 완공)된지 올해로 딱 100년째다. 챔니스관은 미국인 선교사들이 주거 목적으로 지은 붉은 벽돌의 2층 주택으로 미국인들의 건축·주거양식과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스위츠관·블레어관과 함께 '동산의료원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챔니스관 시공 100주년을 맞아 한 세기 동안 대구지역의 근대건축에 대해 짚어본다.

▨근대건축 도입의 수훈, 선교사들

대구지역 근대건축 유입을 주도한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인한 개항 이후 국내에서 활동하던 일본인과 구미인 선교사들이었다. 천주교의 프랑스 신부들이 간접 선교활동을 벌이며 지은 건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남 최초의 고딕건축물인 '계산성당'이다.

프랑스인인 로버트 신부가 직접 설계를 맡아 1900년 소실된 성모성당 재건을 위해 1901년 공사에 들어갔다.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인 기술자들이 동원돼 1902년 5월 완공됐다. 1911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설정 뒤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확장을 거쳐 1918년 12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구 지역 천주교 토착화 과정에서의 고충을 상징하는 건조물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지역에 서양의 건축양식이 도입된 표본이기도 하다.

남성로와 동산동 일대에서 터를 잡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지은 건축물로 대표적인 것은 1908년 완공된 계성학교의 아담스관이다. 미국의 아담스 선교사가 직접 설계했으며 미국 선교부에서 자금(5천 달러)을 지원받았다. 석재는 철거된 읍성의 돌을 썼고 공사에 사용된 창호재료, 유리, 위생, 난방설비 등은 모두 미국에서 가져왔다.계성학교 과학관인 맥퍼슨관도 아담스와 제2대 교장 라이너 선교사의 설계로 1913년 건립됐다.

▨식민지배 시설 세운 일본인들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우월성을 강조하고 통치력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일본인들은 탁지부 건축소에서 총독부 건축소로 이어지는 일련의 관가(官家) 건축이 주류를 이루었다. 대칭성이 엄격하게 유지됐고 건물의 목적에 부합하는 상징적인 면이 강조된 양식주의 건축이 많았다. 근대 공공건축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대구경찰서와 일본이사청은 1909년 건립됐다.

서문로1가에 위치했던 대구경찰서는 설계와 시공을 조선총독부 내 탁지부 건축소가 맡았다. 석조나 벽돌조의 서양 르네상스 양식을 모방한 목조 2층의 일·양(日·洋)절충형 양식을 취했다. 일본이사청은 일본인 거류지 보호를 위해 지어졌으며, 대구경찰서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1913년에는 대륙침략 발판용으로 대구역이 일본인 기술자들에 의해 건축됐다. 이에 앞서 건설에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지은 숙소 장옥(長屋)이 1912년쯤 대신동에 세워졌다. 1920년대 이후에는 자본 침탈을 위한 은행(한성·조선·대구금융조합·조선식산 등) 지점 건립이 잇따랐다. 경상감영길을 따라 당시의 건물들이 아직 남아있다.

▨일제에 맞선 민족자본·기술

1920년대부터는 대구의 민족주의자들이 사회·문화운동과 더불어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일본인들의 건축에 대항하는 교육·문화·상업건물을 서구식으로 건축했다. 일본에서 건축학을 배운 윤학기가 설계한 조양회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항일 민족주의자 동암(東庵) 서상일이 대구지역 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정신 계몽을 위해 1922년 착공, 10월 30일에 완공한 르네상스풍 건물로 1984년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내로 옮겨 광복회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1937년에는 상업자본가 이근무가 일본 상권에 대항해 서문로 변에 무영당 건물을 지었다.

1910년 전후로 건립된 동산의료원박물관 3개동, 1928년 도립 대구의원(현 경북대 병원), 1931년 동산병원 구관, 1933년 대구의학전문학교(현 경북대 의과대학), 1932년 남산교회, 1933년 제일교회 등의 건물도 일제시대에 세워진 대표적인 근대건축물들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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