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토지정의실천연대 주최로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토론회'에서 "부동산정책의 측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래에 쓸 남의 장작까지 미리 사용해 밥을 해 놓고 생색낸 대통령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정책 입안자들의 소신 부족으로 2003년 10'29 대책이 흔들릴 때, 배를 좌초 위기에서 구출한 것은 '강남 불패(不敗)면 대통령도 불패'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였다"며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많이 달랐고 평가받을 만하다"고 했다.
그런가? 이 교수는 노 대통령에게 아첨을 한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말한 것인가?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이 최근 출간한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라는 책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기에 묻는 말이다. 이 교수가 다른 기회에 이 책 내용에 대해 정면 반박해 주면 좋겠다.
노 정권 3년간 전국의 부동산값은 30%나 올랐다는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잠시 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열린우리당의 총선 공약이었으며, 총선 직후인 4월 20일 KBS 1라디오 여론조사에서 86.9%가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004년 6월 9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은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단언했다.
노 대통령은 6월 11일엔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 부문의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한 한나라당에 대해 "경기가 나쁘다고 탄핵을 추진한 한나라당이 경기를 죽일 수 있는 이런 규제를 만들자는 것이냐"며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제발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맹비난했다.
김근태 의원은 6월 14일 노 대통령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불가 방침에 반발하면서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주장했지만, 이는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친노 의원들의 반격에 묻히고 말았다. 유 의원은 "원가 공개는 개혁이고, 원가 연동제는 반개혁이라는 식의 논란은 집값 안정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분양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야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박 논설주간은 노 대통령이 다수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주택 문제를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는 논리로 합리화한 데 대한 국민의 분노는 결정적이었으며, 이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중반 지지율이 밑바닥을 헤매자 "나는 취임 초기부터 레임덕에 빠져 있었다"고 푸념했지만, 박 논설주간은 이를 '사실과 다른 궤변'으로 단정했다. 취임 이틀 뒤인 2003년 2월 27일 지지도는 92.2%였으며, 지지율 급락의 가장 큰 요인은 아파트값 폭등이었다는 것이다.
박 논설주간은 노 대통령이 2005년 7, 8월에 한 일련의 발언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국민, 지식인 집단, 김대중 정부 탓으로 돌리는 걸로 일관했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국민 반응은 얼음장 그 자체였다"고 꼬집었다. 이후에도 노 대통령의 항변은 계속됐는데, 박 논설주간은 노 대통령이 "'공격적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지금 나는 박 논설주간의 책 내용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정우 교수가 '진보적' 관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칭찬하려면 적어도 위와 같은 문제 제기에 답하거나 반론을 하는 게 의무가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교수가 노 대통령에게 아첨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으며 진실을 말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 어느 중간일 게다. '자기 정당화'의 혐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즉, 참여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은 자신의 참여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위해 '노무현 예찬'에 열을 올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는 역대 정권들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일이기에 놀랄 일은 아니지만, 사실 왜곡도 정도 문제가 아닐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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