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살리자, 지역을 살리자-(6)시장(market)과 함께하는 대학

입력 2006-01-19 10:56:01

기업 요구 인력 즉각 양성…유연성 갖춰

지난달 16일 오후 싱가포르국립대(NUS) 기술사업화 전진기지인 앙트푸르너센터. 추아 슈 티앙 센터장이 교수와 직원들을 상대로 기업이 의뢰한 연구프로젝트에 진척이 없다고 따지고 있었다. 센터장은 관련 직원의 시원찮은 대답이 돌아오자 구체적인 연구일정과 단계별 성과를 요구했다. 이 센터장은 학교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성벤처 기업가다. NUS가 기업이 요구하는 연구와 기술사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외부 기업가를 책임자로 앉힌 것. NUS는 기업의 필요와 일정에 따라, 또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같은 시스템을 만들었다.

2004년 영국 '타임스'지 선정 세계대학 랭킹 18위를 비롯해 줄곧 세계 15~20위권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싱가포르국립대. 부산시 규모의 싱가포르에서 NUS는 어떻게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있었을까.

◆다국적 인재 요람

"외국 학생들에게는 본인이 원할 경우 모두 장학금을 주고 실력이 뛰어난 교수를 유치하기 위해 이공계는 다국적 기업이 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로 초빙합니다."

한국인 출신인 조병진(43) 싱가포르대 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연봉이 수십만 달러에 이른다. 전자공학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소에 일한 경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대는 건축, 인문사회과학, 건물토지관리, 경영학, 화학공학, 환경공학, 법률, 의학, 약학, 과학 등 31개 학(부)과와 대학원 과정을 두고 있다. 세계 전체 대학평가에서도 상위권이지만 특히 공학분야(9위), 생화학(15위), 사회과학(13위) 등은 최근 들어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싱가포르대가 2000년 이후 이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데는 다국적 인재를 유치한 데 힘입었다.싱가포르는 1980년까지 물류, 금융의 도시였지만 말레이시아가 잠식해오자 제조업 유치쪽으로 눈을 돌렸다. 휴렛 패커드 등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왔지만 제조업, IT산업도 1990년대부터 인도, 말레이시아에 밀리기 시작했다. 고육지책으로 싱가포르는 '아시아 교육시장 허브'로 방향을 바꿔 생명공학, 의료 및 교육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국공립 대학들은 외국 학생들에게 졸업 후 일정기간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학비의 80%까지 장학금을 지급한다. 모든 유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싱가포르대 유학생 수는 5천 명에 육박, 전체 학생의 20%를 넘어섰다. 교수 및 연구진도 30% 이상이 외국인이다. 실력이 뛰어난 교수들에게는 기업에서 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

싱가포르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대학과도 공동 과정을 개설, 인재를 유치한다. 13개 국가연구소, 11개 대학연구소, 70여 개 일반 연구소 및 연구센터와 연구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해외에도 미국 필라델피아 바이오밸리(펜실베이니아대와 공동),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스탠퍼드대와 공동) 중국 상하이 상하이밸리(푸둥대와 공동) 등 3개 칼리지를 두고 우수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장(market)과 함께하는 시스템

'지구촌 지식기업(Towards a Global Knoeledge Enterprise')'이라는 교훈이 NUS의 지향점을 대변해준다. US는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양성과 기술사업화를 위해 유연한 교육시스템을 갖고 있다. 최근 경제개발위원회(EDB)가 반도체 웨이퍼팹 인력 양성을 요구하자 NUS는 자금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교수채용까지 했다.

또 싱가포르 정부가 생명공학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자 NUS는 물질과학(mateerial science)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과대학 소속이던 물질과학 전공을 공대로 옮겨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조정했다.

벤처기업가이자 싱가포르대 앙트푸르너 센터장인 추아 슈 티앙 씨는 "시장의 요구가 있으면 정부는 이를 파악, 대학에 인력양성을 요구하고 싱가포르대는 대학원 과정에서 새 전공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교육시스템을 만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대의 성장비결에는 기술사업화 시스템이 큰 기여를 했다. 교수나 연구원이 연구했거나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만든 'NUS 스핀오프(Spin-Off) 기업'제도가 있다. 학교와 교수가 절반씩 지분을 갖는 스핀오프 기업은 세미캡스, 애로매트릭스, 바이오넛트라 등 30여 개가 설립돼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까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갖고 있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프로젝트가 쏟아진다. 전기 및 컴퓨터 공학과의 경우 삼성 등 세계적인 기업들로부터 수행하는 프로젝트 규모는 연간 200여억 원에 이른다.

학생들에게도 기업가정신센터, 테크노기업가정신훈련프로그램, 학생인큐베이션센터를 운영하며 기업마인드를 심고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추아 춘 멩 세미캡스 CEO는 "시장과 유리된 기술, 학과라면 존재 의미가 없는 대학이다"며 "앞으로 대학은 얼마나 기술사업화에 성공하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가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사진: 싱가포르대는 시장(market)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교육시스템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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