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시위

입력 2006-01-16 11:48:16

전두환 집권기인 1987년 촉발된 6'10 항쟁은 6'29선언이라는 민주화 조치를 획득하는 동력이 됐다. 당시 서울 역전을 꽉 메운 시위의 물결은 거대했다. 전대협으로 약칭되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6'10 항쟁의 주역이었다. 그 중심 인물은 1기 의장 이인영(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전대협 세력의 맏형인 그는 이로 인해 그들 내에서 신화적 인물로 평가된다.

◇국민의 상당한 호응을 등에 업은 6'10 항쟁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시위 사건이다. 또한 한국의 시위문화를 바꾼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6'29선언이라는 일종의 항복 선언을 받음으로써 시위 세력은 승리했다. 그 핵심 세력 전대협은 역사를 이끄는 선도 세력처럼 기세 등등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맹렬한 시위로 표출해냈다. 시위의 물결은 반미'통일 운동으로 이어졌고 대학생들의 시위 열풍은 연일 전국을 휩쓸었다. 전대협 3기 의장 임종석(한양대 총학생회장)시대였다.

◇임종석은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대축전에 임수경을 파견해 파란을 일으켰다. 통일운동의 절정을 구가한 임수경 북파는 현행법을 어긴,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된 임종석은 최장기 수배 기록을 세우며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경찰, 공권력을 비웃고 다녔다. 그 무렵 대대협(대구지역 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학교인 영남대 주변도 연일 시위의 수라장이 됐다.

◇전대협 가담 학생들에게 당시 정권과 경찰은 '적'이었다. 학생들은 장송곡 같은 '임을 향한 행진곡'의 구슬픈 결연함을 가슴에 깔고 '적'들을 향해 돌'화염병'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해 가열찬 투쟁을 벌였다. 당시의 전대협 간부들은 대거 국회에 진출해 있다.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등 의장 출신을 비롯, 우상호 이철우 김태년 백원우 최재성 복기왕 이기우 등 대부분 집권여당 의원들이다.

◇최근 폭력시위가 더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전'의경 부모들이 평화시위를 촉구하는 시위에 나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 총수가 문책 퇴임하자 이에 대한 경찰의 반발도 들끓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되레 과잉진압 말라고 전'의경에게 명찰을 부착하겠다는 '대책'만 나왔다. 시위에 정통한 전대협 출신 의원들이라도 한마디 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김재열 논설위원 solan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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