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헌 사건의 이면이 궁금했고, 하고픈 말 다 했다"

입력 2006-01-15 17:16:33

"6명이 모두 잡범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흉악범이 아니었다. 경찰 3만명이 동원됐는데 8박9일동안 이들을 잡지 못했다. 그렇다면 분명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말문이 열린 이순열 대표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2년반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준비한 영화이니 그럴만도 했다. 게다가 실화다. '그때 그 사람들'이나 '실미도'가 겪었을 홍역을 '홀리데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다.

그는 19일 개봉하는 '홀리데이'(감독 양윤호, 제작 현진씨네마)의 제작자다. 더불어 크레디트에 '원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굳이 '원작자'를 겸한 까닭을 물었다. 명쾌했다.

"첫째는 직접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해 이야기를 엮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영화로 인한 모든 법적 분쟁을 떠안기 위해서다."

1988년 10월 서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지강헌 일당의 교도소 탈주·인질극을 극화한 '홀리데이'는 요소 하나하나 변호사를 통해 법률적 검토를 거쳐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모델이 된 지강헌이 '지강혁'으로 바뀌기도 했다.

중간에 제지하지 않으면 끝도 없이 펼쳐졌을 그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왜 지강헌인가

▲2003년 말 우연히 옛날 여성지에 실린 글을 읽었다. 지강헌 사건의 마지막 여자 인질이 쓴 수기였다. 그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제목을 보자 느낌이 왔다. '충격과 악몽의 16시간'이라는 첫문장은 평범했다. 그러나 두번째 '그들은 인간적이었다'는 문구에서 사건 이면에 뭔가 있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당시 기사들을 다 뒤져봤다.

--결과는 어땠나

▲80%는 이들을 나쁜놈, 흉악범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20% 정도는 그들의 행동에 '왜'라는 물음표를 달았다. 왜 마지막 인질극을 벌인 장소가 북가좌동이었고, 어떻게 해서 떼로 몰려다니면서도 8박9일간 잡히지 않았을까에 의문을 제기했다. 알려졌다시피 그들 6명은 모두 단순 절도범이었다.

--어떻게 자료를 수집했나

▲검찰에 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띄웠지만 씨도 안 먹혔다. 오픈을 하지 않으니 더 궁금했다. 그러던 중 언론을 통해 영화 계획이 알려졌다. 그러자 사건 관계자 18~19명이 제발로 찾아왔다. 그중에는 2박3일간 그들과 함께 있었던 인질도 있었고, 지강헌이 죽기 전 마지막 1시간을 통화했던 모 신문사 기자도 있었다. 이들은 "영화를 만들려면 제대로 그려달라. 불쌍한 사람들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32명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영화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이들이 8박9일간 다섯집을 돌면서도 잡히지 않았던 것은 인질들이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질들은 이들을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로 보고 동화됐던 것이다.

인질범 중 유일한 생존자인 A씨(극중 여현수가 모델로 연기한 인물)도 직접 만났다. 그는 현재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인데 2007년 출소 예정이다.

--A씨도 협조했나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듣고 만족해했다. 두차례 면회를 갔고, 이후 그로부터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 그는 모범수라 외부 전화통화가 가능하다. 연말에는 연하장도 받았다. 영화의 성공을 기원해줬다.

--장애물도 있었을텐데

▲물론이다. 협박을 받기도 했다. 사건 당사자라며 돈을 요구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범죄자들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뭔가

▲지강헌 일당은 보호감호법 맹점의 희생자들이다. 동일범행을 세 번 이상 반복하면 보호감호에 처한다는 규정은 사실상 절도죄 등 잡범들을 잡아들이는데 사용됐다. 그 때문에 총 556만원을 훔친 지강헌은 17년을 선고받는데, 같은 기간 권력을 가진 자는 600억원을 횡령하고도 7년을 선고받았다. 대사로도 언급되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첫 장면을 구룡마을로 설정하며 1980년대에는 없었던 그 옆 타워팰리스를 그대로 비춘 것은 우리 사회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갭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은 없는 자들의 처지를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난 벌어도 봤고, 망해도 봤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안다. 지강헌 일당은 누구를 헤치려했던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처지를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극중 실제와 허구가 어느 정도 비율인가

▲8:2다. 최민수가 연기한 교도관은 허구의 인물이다. 그는 기득권자를 대변한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 앞을 쳐들어 간 것은 우리가 이들의 생각을 유추해서 삽입했다. 이얼이 연기한 대철이 홍콩 밀항을 시도한 것 역시 허구다.

--시사회에 사건 관계자들이 왔었다던데

▲당시 인질 중 한명과 경찰 4명이 왔었다. 모두 "어떻게 조사했길래 이렇게 사실적으로 그렸냐"며 놀라워했다. 교도소에 있는 A씨도 영화를 보기를 강력 희망했는데, 그게 성사되지 않아 안타깝다.

--어두운 소재라 투자 과정에서부터 속을 끓인 것으로 안다. 개봉을 앞둔 지금 후련한가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 할 만큼도 다 했다. 개봉 이후의 일은 내 손을 떠난 일이지만 속은 후련하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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