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구·경북을 놓아주라

입력 2006-01-13 11:39:02

대한민국을 '서울 공화국'이라고 한다. 좀 더 좁혀 정치만 보면 대한민국은 '여의도 공화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는 5월 31일 치를 제4회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5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요즘 여의도를 보면 '여의도 공화국'이란 말이 실감난다.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이 경쟁적으로 여의도를 찾고 있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과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대구·경북 한나라당 의원들 방은 아예 문전성시다. '공천=당선'이란 등식을 금과옥조로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종가를 치고 있는 대구·경북 국회의원이다 보니 '힘'이 들어갈 만하다. 지역 의원들의 자신만만함은 곳곳에서 읽힌다.

새해 벽두에 권오을 한나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정권을 되찾지 않는 한 대구·경북의 발전은 없다"면서 "단체장이 아무리 신망이 높아도 대권에 필요치 않다고 판단되면 인구가 비교적 적은 지역에서는 선거 패배를 각오하더라도 당심(黨心)이 깊은 사람을 공천한다는 것이 당 방침"이라고 일갈했다.

여기서 정권을 '되찾는다'는 그의 어법을 굳이 문제삼고 싶진 않다. 하지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겨야 대구·경북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말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면 대구·경북이 천지개벽할 테니 지금 힘들더라도 그때까지 참으라는 얘기일까. 아니면 한나라당 대통령을 만들어줘야 국회의원 공약을 지키겠다는 엄포일까.

더욱이 지역민의 신망이 높은 단체장일지라도 '표'에 도움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리겠다는 대목에서는 전율까지 느껴진다.

지역민이 신망하는 단체장은 어떤 사람일까? 도덕적이고 성실하고 빠듯한 지방정부 살림이지만 혈세를 적재적소에 써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넓고 긴 안목을 갖고 비전을 제시해 주민들이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그런 신망 높은 단체장을 공천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오직 대권만 바라보는 것은 비단 권 위원장만이 아니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사석에서 기자들이 대구·경북 경제를 걱정하자 "한나라당이 집권해 목에 때를 벗기면 된다"고 말했다. 대구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다른 의원은 "대권 창출에 도움이 되는 인사가 시장 후보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권에 목을 매는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16대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다 된 듯하다가 막판에 뒤집기당해 상실감이 더 심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진 것이 마치 단체장 탓이라도 되는 양 치부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대구 유권자의 77.8%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경북은 73.5%다. 정상적이지 않다. 물론 노무현 후보에 대한 광주(95.2%), 전남(93.4%), 전북(91.6%) 지지도보다는 낮다. 그래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57만 표 차이로 떨어진 이회창 후보가 대구·경북에서 각각 10%포인트 더 지지했어도 마찬가지로 떨어졌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려면 대구·경북이 아니라 서울, 경기, 충청, 강원 등지에서 표를 더 얻어야 했다는 얘기다.

단체장은 그 지역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한나라당은 대구·경북의 단체장을 대권용으로 삼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지역 발전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고, 그 비전을 실현시킬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공천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돼야 한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만큼은 대구·경북을 놓아 주어야 한다. 대구·경북이 언제까지나 '한나라당 대권'의 볼모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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