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배씨 6·25 공훈 모른 채 전역…뒤늦게 알아
"70이 넘게 살면서 이보다 값지고 귀한 선물은 없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박기배(78·울산시 남구) 씨는 가슴에 화랑무공훈장을 달고 나자 반세기 동안 맺혔던 한이 풀리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향 경주에서 농사를 짓던 박씨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것은 1950년 8월 그가 22세이던 때였다.
어느날 갑자기 집으로 배달된 입대영장을 받아들고 대구에 있는 1교육대로 향한 그가 받은 교육이라고는 3일간의 기초군사훈련이 전부였으나 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속된 바로 그날 팔공산에서 첫 전투를 겪었다.
박씨는 "이후 문산, 연천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 것만 해도 여러 번이었다"며 "충북 진천전투에서는 북한군의 기습으로 중대장 등 중대원 대부분이 전사했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52년 연천의 '베티고지' 탈환 전투에서는 선두에서 돌격하다 머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혔지만 긴박한 전황에 제대로 수술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전투에 참가한 적도 있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박씨는 1954년 4월에 훈장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그 해 7월에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전역했다. 전쟁이 끝난 뒤 반세기 동안 몸과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온 박씨는 지난해 8월 울산보훈지청으로부터 국가유공자로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육군본부의 확인을 거쳐 새해 벽두인 12일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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