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산실' 고스란히…공자사상 계승

입력 2006-01-11 09:37:58

유가학파의 창시자 공자(孔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曲阜)는 노나라의 수도로 유구한 역사와 문물고적이 많아 중국의 첫 번째 역사문화도시로 공포된 곳이며 지금도 자동차와 마차, 인력거가 거리를 메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타이안(泰安)시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곡부는 도시전체가 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중심에 있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외곽에 있는 공림(孔林) 등 삼공(三孔)으로 유명하다.

◆공묘

공묘는 중국 역대 왕조가 공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오랜 역사와 더불어 거대한 건축물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된 중국 3대 고건축물 중 하나다.

공자가 죽은 이듬해인 기원전 478년 제자 노애공(魯哀公)이 공자 생전의 옛 집 삼칸을 사당으로 해마다 제사를 지내다 유교사상이 역대 통치자들의 숭배를 받으면서 재건과 증축이 이뤄지면서 오늘날 남북으로 약 2km길이에 면적 21.8ha(6만6천 평)의 거대한 건축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

공묘의 주건축물인 대성전은 공자의 제사를 주관하는 장소로 대전 안에 공자의 채색소상이 모셔져 있으며 천장과 각조 편액은 금(金), 적(赤), 청(靑)으로 단장돼 있다. 대전 앞 테라스는 제단으로 지금도 매년 '곡부국제공자문화절' 개막식이 여기서 거행된다.

또 역대 봉건황제들이 직접 지은 비문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한 13비정(十三碑亭)은 원과 금나라 때 각 2개씩 지어지고 나머지는 청나라 때 지어져 시대별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대성전 앞 행단(杏亶)은 공자가 학문을 강연했던 곳으로 네모난 정자형식의 황색기와에 겹처마 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현재 공자의 옛집은 사라지고 우물만 남아 있다.이 밖에도 송, 원, 명, 청대를 거치면서 공자를 찬양한 비문 2천200여 개를 모아 둔 공묘비림은 서예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공부

공부는 공자의 직계장손세대들이 거주하는 관저로 공자 사후 황제들이 그의 자손들에 대한 수차례의 하사를 거치면서 부단히 커져 지금은 부지면적이 16ha((4만8천400평)에 달한다.

전체 건물 배치는 삼당육청으로 구성돼 있으며 삼당은 역대 장손(연성공)들이 정무를 처리하는 곳이고 육청은 공부의 사무를 맡아보는 곳이다.특히 공부가 소유한 많은 국보급 보물 중 청대 건륭황제가 하사한 만한전석의 식기는 중요한 귀빈을 접대할 때만 사용한다.

지금까지 공자의 후손은 82대를 이어오면서 그 수만도 약 400만 명에 이른다. 중국에서 후손이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이 곡부. 인구 60여만 명의 곡부시에 공자 후손만도 10여만 명에 이른다.

◆공림

공림은 부지 면적이 약 200ha로 공자와 그의 후손들의 전용묘지를 일컫는다. 곡부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공림은 크고 작은 공씨무덤 10여만 개가 자리하고 있으며 묘비만도 6천 개가 넘는다. 주위엔 길이 6km의 홍색 담이 둘러 있다.

공자묘지는 공림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며 바로 옆에 공자보다 2년 먼저 세상을 뜬 아들 공리(孔鯉)의 묘가 있다. 공자묘지는 그의 명성에 비해 실제론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묘지 왼편에 공자 사후 6년간 시묘살이를 한 제자 자공(子貢)의 단칸집이 함께 있어 유교적 의리와 사제간 각별한 정리를 짐작게 하고 있다.

글·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사진1: 공자를 추모하는 제사가 행해지는 공묘의 대표적 건축물인 대성전 2. 공림 가장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공자의 묘지 3. 공부의 삼당육청 중 한 건물 4. 곡부시 중심가에 있는 중국 재래시장의 전경.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