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나는 박정희가 원망스럽다

입력 2006-01-10 11:52:39

나는 박정희가 다녔던, 지금은 없어진 구 대구사범 교정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담쟁이가 무성한 자그마한 붉은 벽돌 건물 앞에 서 있는 표지석을 보고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전신이 대구사범임을 알았다. 교련복 차림에 목총을 메고 십리 행군을 하면서도 자주 국방을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알았고 뙤약볕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이를 악물고 부동 자세로 들어야만 했다. 참으로 힘들고 곤고했던 박정희 시대의 성장기였다.

그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정에는 최루탄과 짭새가 넘쳤으며 밤 12시 종로통에 공포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면 거리의 불빛은 일제히 꺼지고 달리던 차마저 숨을 죽였다. 길목마다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술꾼들은 못 다 마신 술병을 들고 여관으로 튀었다. 술김에 방범대원에게 호기를 부려 보다 얻어터진 채 유치장에서 공짜 잠을 자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이룩해 냈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수치스러움은 이제 11대 경제 대국이 됨으로써 가뿐하게 씻었다. 휴대전화와 한류는 우리 어깨를 으쓱거리게 하고 있고 민주주의라는 말만 꺼내도 주위를 둘러봐야 했던 시절, 무자비한 인권 유린의 아픔도 겪었지만 결국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세계 유일의 국가로 이만큼 컸다. 지나온 성장의 고비고비에는 박정희가 자리 잡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유례없는 발전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도 엄청났다. 노동 탄압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눈부신 성장이라는 장미꽃 다발 뒤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통과 눈물이 뒤범벅된 격변의 파노라마가 응축돼 있다.

나는 박정희 시대의 과오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가, 또는 그의 추종자들이 만들어 낸 음울한 환경을 말하고 싶다. 박정희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인간을 황폐하게 했다. 독기에 올라 몸부림치지 않으면 스스로를 견딜 수 없게 만든 시대적 환경은 오늘날까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나는 작금의 노무현 대 반노무현 연합의 갈등의 뿌리도 박정희 시대의 환경이 만들어 낸 유산으로 보고 싶다. "옳은 소리를 저토록 X가지 없이 한다"는 유시민의 촉새 같은 입술도 따지고 보면 그 시대가 잉태한 결과물이 아닐까.

유시민 의원의 장관 내정 파동을 보면서 나는 그가 투사가 된 환경을 말하고 싶다. 스물 몇 살의 유시민이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깨물며 차가운 감방에서, 빼빼 마른 학생에서 독기 서린 투사로 변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에 대해 짚어보고 싶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얼마나 중요할까.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네시아지만 두 번째로 많은 나라는 중동 국가가 아니라 놀랍게도 인도다. 무려 1억 5천만 명의 무슬림이 인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알 카에다 등 9'11 테러에 관련된 어떤 테러 조직에도 인도인 무슬림은 없다. 포로 학대로 악명을 떨친 미국의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포로 가운데도, 지금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어떤 테러 조직에도 인도인 이슬람교도는 없다. 왜 그럴까? 최근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펴낸 토머스 프리드먼은 환경을 그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인도는 오랜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민주적인 전통을 갖고 있으며 탈권위적인 환경에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나타나는 독기 서린 자살 폭탄형 투사가 나타나지 않고 깊은 분노도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프리드먼의 지적처럼 권위주의적인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우리 사회에 등장했던 수많은 민주 투사에게 대입해 보고 싶다. 박정희 시대의 억압적인 환경은 유시민 같은 투사는 물론 쇠파이프 시위 등을 잉태시켰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강력한 항생제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정희 시대가 남긴 유산이 오늘날 양대 세력 간의 극단적인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한다. "나는 괜찮아"라는 최후의 말로 그는 구시대적 영웅의 모습으로 떠났지만 남아 있는 우리들은 괜찮지 않다. 나는 사학법 파동, 유시민 파동 등 신년벽두부터 몰아닥친 일련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경제 성장이란 좋은 약만 주면 됐지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이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병까지 주고 간 박정희가 새삼 원망스럽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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