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이다. 일 년 전 이맘 때쯤 딸아이 대입 응모를 앞두고 팽팽했던 그 긴장감을 어느새 다 잊고 무심히 지내는데, 한 통의 전화가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우리 아이가 ㅇ대 체육대를 가고 싶어하는데, 주변에서 그렇게들 말리네? 그 점수면 학교를 조금 하향지원해서 인문대나 경영대를 갈 수 있는데 어째서 체대를 보내냐는 거야. 아,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스러워 죽겠어.
소설가인 그 친구는 실제로 몸살이 단단히 나서 열이 나고 온몸이 얻어맞은 듯 쑤시지만 본인인 아들이 아예 몸져 누워 며칠째 끙끙 앓고 있기에 자기 병은 돌볼 생각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일말의 동정도 표시하지 않고 되물었다.
당신, 작가 맞아? 왜 그렇게 주체성 없이 휘둘려? 남이 뭐라던, 내가 원하는 걸 하면 되지, 앓긴 왜 앓아?
믿거라 하소연했던 친구 입에서 나온 냉정한 대꾸에 입시생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통념! 통념 때문이지, 왜는 왜야? 알 만한 사람이…당신은 왜 딸내미 인문대 보냈어?
응? 왜 인문대를 보냈느냐고? 맹세컨대, 나는 딸아이를 아무 데로도 보내지 않았다. 단지 아이가 스스로 인문대로 갔을 뿐이다. 사실 체육을 엄청나게 잘하고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그 친구의 아이처럼 어떤 뚜렷한 자질이나 소양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체육이든 뭐든 본인이 원하기만 했다면 백프로 지지했을 것이다. 거기에 무슨 통념이 끼여 들고 말고 할 여지가 있겠는가. 한데 평소에 매우 이성적인 한 작가 친구가 통념이란 그 실체 없는 괴물 때문에 아들과 더불어 병이 났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 중에는 일부러라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더러 있다. 신경정신과 상담실이 입시생 엄마들로 붐비는 우리 사회의 진풍경도 그 하나다.
구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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