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스톡홀름 한 은행. 한 강도가 고객 4명을 인질로 경찰과 무려 131시간을 대치했다. 처음엔 극도의 공포감에 떨던 인질들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강도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강도가 경찰과 험악하게 맞서면서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 데 대한 온정 같은 거였다. 극단적 고립감에 갇히는 인질극 속에서 차츰 동병상련에 빠져든 것이다. 마침내 인질들은 경찰에서 강도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한 여자 인질은 사건 이후 강도범을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말이 생겨났다. 1997년에 나왔던 영국 영화 '인질'도 비슷한 내용으로 흘러간다. 대기업에서 목이 잘린 주인공은 어느 날 사장에게 일방적 해고를 따지러 갔다가 얼떨결에 사장 딸을 인질로 삼는 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사장 딸은 따분하던 차에 그 같은 상황을 반기며 인질범에게 행동 요령까지 알려주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88올림픽이 막 끝난 1988년 10월 서울에서 터진 탈옥수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도 그런 사연이 담겨 있다. 인질로 잡혀 있던 가정집 사람들은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흉악범이라는 인상과는 달리 자신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일당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당시 포위망을 조여 오는 경찰을 향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외치던 인질범을 옹호하며 강압 진압을 말라고 절규하던 한 소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울대 문신용 의대 교수는 "많은 국민이 아직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을 믿지 않는 것은 일종의 인질 효과"라고 비유했다. 그는 "인질로 붙잡히면 시간이 흐르면서 인질범의 시각에 동화되고 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황 교수에 대한 지지가 식지 않고 있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며 한 강연에서 그같이 말했다. 실제 한국과학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황 교수 후원회의 가입자가 논문 조작이 들통난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황 교수 후원회는 줄기세포 허위 논란이 시끄러웠던 지난해 11, 12월 두 달 동안 2천여 명이 늘어 현재 5천800명 선을 넘었다. 이런 현상을 문 교수가 설명한 인질 효과로만 볼 수 있을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쨌든 황 교수의 몰락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안쓰러운 심정이 느껴진다. 내일 서울대가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지만 황 교수의 입에서 모든 진실이 나왔으면 좋겠다.
김성규 논설위원 woosa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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