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 경제인과 차 한잔-최명주 교보증권 사장

입력 2006-01-09 10:51:29

대구·경북의 경제가 어렵다. 십수 년째 눈에 띄는 대형 프로젝트가 없다. 출향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구·경북을 걱정하는 모습이 가끔 목격된다. 대구·경북의 활력을 기대하며, 출향해 수도권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제인을 만나 다양한 경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선진 금융기법을 '한 수 배우러' 최명주(崔明周·50) 교보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6일 여의도 집무실에서 만났다. 180cm 훤칠한 키의 그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고향 까마귀'인 취재진을 반겼다.

◆화려한 변신=대구·경북 주민들에게 최 사장은 계명대 교수 또는 TV 토론회 사회자, 신문 칼럼니스트로 기억된다. 특히 TV 토론회에서 그는 토론을 무리없이 이끌어 명사회자란 평판을 들었다. '잘 나가던' 교수였던 그가 '계명대 파동' 와중에 지난 1998년 2학기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은 지역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 벌써 7년반 전의 일이다.

이후 대구를 떠난 그는 곧바로 보스턴컨설팅그룹 금융고문, IBM BCS 부사장을 역임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국은행 외환관리부 출신인 그로서는 본가로 돌아간 셈이었다.

마침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한국 금융계에 컨설턴트로서 그는 큰 역할을 했다. 생명보험회사 부실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됐던 독일의 1990년대 경험을 전해줬고, 금융리스크 관리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계열사를 동시에 소유하는 금융지주회사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최 사장을 금융계가 탐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2~3개 금융사가 그에 대한 '헌팅'에 나섰다. 지난해 4월 그가 교보증권 상임고문으로 영입되자 증권가에는 조만간 사장이 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한 달 뒤 그는 주총에서 소문대로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대학 교수에서 우리나라 유수의 증권회사 사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다.

◆벤처와 중소기업의 친구=최 사장의 취임 일성은 '2년 내 IB(투자은행) 분야 업계 1위'였다. 투자은행 분야란 주식·채권 등 직접 증권의 인수 및 판매와 담보 대부를 통해 기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하는 업무다.

"기술이 있고 경영혁신 역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금이 달려 자기 꿈을 못 피우는 기업이 많습니다.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하려는데 재무제표나 실적을 가져오라고 하니 기가 막히죠. 혁신형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같은 자금조달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교보증권이 중개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지역에서 중소기업 애로를 오랫동안 지켜 본 사람답다.

최 사장은 먼저 본사에 이노비즈IB센터를 만들었다. 벤처와 중소기업 애로사항을 전화나 인터넷, 직접방문을 통해 무료상담하는 본부다. 상장, 증자, 인수합병, 해외자금 중개는 물론 퇴출 돕기 등 그 기업에 걸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한다.

지난해 말 경북 구미와 대전 대덕에 금융센터도 만들었다. 이노비즈IB센터의 날개 격이다.

◆절반의 성공=기업의 장래성을 보고 투자한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교보증권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듯하다.

두 가지 확실히 앞선 기술을 가진 PDP 모니터 제조회사가 4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채무부담과 감가상각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천500만 달러를 추가 투자받겠다고 했다. 그 기업의 거래은행에 알아보니 대출 회수 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최 사장은 그 기업의 기술과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CEO를 봤다. 고심 끝에 유럽계 금융사로부터 1천500만 달러를 투자받도록 주선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기존 거래하던 대기업이 거래처를 잃을까 걱정해 170억 원을 무이자로 대출했다. 이 회사는 덩달아 막판 애를 먹이던 기술적 문제까지 해결해 금방 양산체제로 들어갔다.

구미 성일텔레콤이 최근 코스닥에 등록한 것도 일종의 최 사장 작품이다. 휴대폰 LCD 모듈을 생산하는 이 회사를 벤처라 부르기가 애매했다. 최 사장은 그러나 휴대폰 LCD모듈 제조가 우리나라에서는 낮은 수준의 기술이라도 동남아 등지에서는 핵심기술인 점에 주목했다. 마침 CEO도 동남아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설득 끝에 코스닥에 등록시켰다. 성일텔레콤은 코스닥 등록 직후인 지난해 12월 인도에서 6천만 달러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런 적극적 마케팅 덕분에 교보증권은 6개월여 만에 50여 개의 유망 중소기업을 발굴했다. 지난해 4/4분기에는 이노비즈IB본부 등이 벌어들인 순이익이 증권사 고유의 수익원인 주식위탁매매 수수료와 맞먹을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꿈은 계속된다=최 사장의 사무실에는 교보증권이 우리나라 1호 증권사란 증명서와 지구의가 나란히 놓여 있다. 1호 증권사이면서 그에 걸맞게 증권업 발전에 기여했느냐를 늘 반추하기 위해서라 한다.

"지금 동북아의 금융지도를 그리면 교보증권이 점이라도 찍히겠느냐"고 반문한 그는 "색깔있는 회사로 점을 찍고 싶다"고 했다.

'색깔'은 중소기업과 고객을 섬기는 증권사로 정했다.

'1004 운동'이 색깔 만들기의 한 방편이다. 임직원 1천여 명이 각자 유망 중소기업 1개씩을 섬기자는 취지다.

최 사장은 또 종합주가지수 대비 고객수익률을 매달 챙긴다. 주가는 오르는데 돈을 잃는 고객이 있어 증권사가 불신받는다며, 고객의 수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그가 지수대비 고객수익률을 영업직원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고객수익률이 부쩍 개선되고 있다 한다.

최 사장은 취임 직후 전 직원들에게 나침반을 하나씩 돌려 신선한 파문을 던졌다. 자기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 항상 자문하자는 뜻에서였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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