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도 더 건져야지요."
6일 대구 서문시장 2지구 2층. 소방관 입회하에 화재로 잿더미가 돼버린 상가로 올라선 방외득(72)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자국과 찌그러지고 기울어진 벽, 타다 남은 옷감 원단들이 남았을 뿐, 점포는 사라지고 없었다. 불에 그슬리거나 검은 재로 얼룩진 원단들은 하얗던 본래 빛깔을 잃어버렸다.
"이 곳에 자리를 잡은 지 30년도 넘었어요. 원단장사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다 보냈는데…. 세입자인 데다 보험도 못 들었는데 이제 어디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네요."
원단을 들어내던 할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울어봐야 이미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 하지만 삶의 터전이 화재로 인해 모두 날아가 버린 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며 화재 현장에서 진화작업을 지켜보던 일도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처음엔 1층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곧 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불길이 2층, 3층으로 타올랐어요. 제 가게가 불에 휩싸이는 걸 본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더군요. 그나마 제 가게는 건물 바깥쪽에 있는 바람에 이거라도 건져낼 수 있지, 건물 중앙부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도 없어요. 요즘은 시위 현장에서 나눠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으니 노숙자나 마찬가지인 셈이 됐네요."
5일 중구청 화재수습대책본부를 찾아 타다 남은 물건이라도 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통사정했던 방 할아버지. 그가 말하는 피해액은 대략 5천만 원. 현장에 남아 있던 원단들은 화재진압 당시 뿌린 물이 추운 날씨에 얼어붙는 바람에 더욱 무거워졌다.
어깨에 둘러메고 원단을 옮기는 칠순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연신 뿜어져 나왔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옷과 손, 얼굴에는 검댕이 묻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30여 개의 원단을 1t트럭에 싣고 염색공장으로 가져간다는 할아버지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내겐 모두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물건인데….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가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갑니다. 세탁, 염색해서 팔 수 있을지 물어봐야겠어요. 모두 팔아봐야 50만 원도 손에 못 쥐겠지만 자식 같은 물건을 버릴 순 없지요. 자식을 버리는 사람이 있나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사진: 6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화재 피해 상인인 박외덕 할아버지가 불탄 점포에서 타다 남은 물품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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