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을 찾아서-경남 양산시 서준병씨 집

입력 2006-01-07 09:12:39

"어릴 때부터 한옥에서 살아 한옥만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아무리 화려한 집도 한옥보다 좋을 수 없지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신주마을에 사는 서준병(53)씨는 한옥 예찬론자다. 온 곳을 돌아다녀도 눈에 띄는 집이 없는데 한옥만 보면 그저 좋아서 달려가고 싶을 정도란다.

그의 집은 도로변에서도 잘 보인다.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돌담 안에 운치 있게 자리한 한옥. 500평 대지에 본채(18평), 아래채(13평), 대문채(8평)가 ㄷ자형으로 놓여있다. 보기 좋은 한옥이 제실인가 싶어 길 가다가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쁜 집을 배경으로 야외촬영을 하고 싶다고 부탁하는 예비 부부들도 있다.

"본채는 지은 지 48년 됐는데 10년 전에 수리해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아래채는 3년 전, 대문채는 1년 전에 한옥으로 복원해 지었습니다."

도로 맞은편 축사에서 젖소를 키우며 우유를 짜는 일을 하는 그는 마을이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골짜기 같이 들어앉아 전원주택을 마련해 부산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적잖다고 했다.

벌써부터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어 봄을 재촉하는 듯한 대문에는 지난해 8월 입주상량(立柱上樑)한 날짜와 함께 '개문만복례(開門萬福來)'라는 글자가 적혀있어 문만 열면 온갖 복이 절로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로 옆 대문채는 황토로 지은 것. 하지만 간편하게 흙벽돌을 쓴 것이 아니라 원통 기둥을 세워 가는 나무를 대 엮은 뒤 흙을 바르는 옛 방식을 응용했다. 탱주나무, 닥나무 등을 고은 물로 흙을 개는 등 화공약품을 쓰지않고 집을 지었다. 건조를 하면서 잔금이 가면 흙물을 발라 문지르는 작업을 8번 정도 반복해 뜨끈뜨끈하게 장작을 때도 흙 벽면이나 방바닥이 갈라지지 않고 매끈했다. 이곳은 서씨가 손님을 맞이하는 전용 공간으로 쓰고 있다.

"서구문화가 들어와 손님을 무조건 본채로 모시지만, 우리 전통문화는 가족·친지 등 가까운 사람만 본채로 모시지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까."

그는 대문채가 의자도 없고 넓지 않지만 좋아하는 손님들이 적잖다고 했다. 천장도 흙을 발라 아치형으로 마무리한 구들방은 장작을 때 뜨끈뜨끈한 게 자리를 뜨기 싫게 만들었다. 군대에 간 아들 방으로 지은 아래채는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한옥으로 싱크대 등을 갖춰 손님들이 많이 오면 묵기도 한다고 했다.

"한옥은 평당 건축비가 500만∼600만원으로 비싼 편입니다. 하지만 잠깐 쓰는 물건은 돈을 아끼는 게 좋지만,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쓰는 물건은 최고를 추구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옥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 좋지요. 흙집은 새집증후군 같은 걸 걱정할 필요가 없어 건강에 아주 이롭습니다."

그는 목돈을 들여 본채에 심야전기 보일러 난방과 태양열 온수 시설을 갖춘 것도 장기적인 안목에서였다고 한다. 업소용 큰 물탱크를 설치해 심야전기를 낮 동안 활용한다. 노모가 계시기에 불편하지 않게 방을 훈훈하게 해도 한달 전기세는 얼마 나오지 않아 경제적이라고 했다.

"1년에 한 번 집을 손보는 날을 정해 두고 있습니다. 청명·한식을 기준으로 삼아 한옥을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나무에 페인트칠을 하고 흙이 떨어져나간 부분을 바르는 등 꼼꼼히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지요."

많은 돈을 들여 좋은 나무를 사서 심어도 되지만, 스스로 키우는 재미가 있어야 보람이 크다고 말하는 그는 차차 살면서 정원도 꾸며나갈 생각이다.

그의 집 바로 옆에는 부산에 사는 매형 김우성(65)씨가 주말마다 별장 삼아 이용하는 한옥이 200평 대지 위에 자리해 있다. 서씨가 집을 지키고 있으니 담을 쌓거나 대문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도둑을 보기 힘든 동네 인심을 엿보게 했다.

글·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사진 : (위로부터)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돌담 안에 자리한 한옥이 정겹다. 지난해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자가 봄을 재촉하는 듯 하다. 정갈한 한옥. 서까래가 보기 좋게 드러나 있는 집 내부. 고향에서 젖소를 키우며 한옥으로 전원주택을 만든 서준병씨. 정재호편집위원 jhchu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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