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다시 개띠 해가 돌아오자 '58년 개띠'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올해 49세로 대한민국 변화의 중심을 겪어오면서 역사의 애환을 품고 살아왔기에 이들의 유대감은 남다르다. 그 때문인지 12지 동물띠 중 유일하게 '58년 개띠'라는 별칭을 달고 다닌다. 왜 유독 '58년 개띠'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격동의 현대사 산증인
'58년 개띠'의 특별함은 한마디로 '격동의 시대를 지내온 세대의 설움'이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찾아온 태풍 '사라'는 1천 명 가까운 생명을 앗아가며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다시피 했다. 큰 사회적 변화나 대형 사건이 있을 때 늘 그 중심에 있기도 했다. 반공교육, 낡은 고무신, 미군원조 옥수수빵과 분유가루, 60년 보릿고개, 고교 시험 마지막 세대, 장발단속 및 통행금지, 국민교육헌장, 새마을 운동, 유신헌법, 5.18 광주사태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온 몸으로 겪어온 또래다.
아픔은 초년, 청년기에 그치지 않았다. 안정을 찾을만한 중년에 들어서자 1997년 말 외환위기(IMF)로 또다시 실직의 아픔을 겪은 대표적 세대이기도 하다.
◆과도기적 낀 세대
'58년 개띠'는 산업화의 산물인 이농현상으로 가장 먼저 도시로 빠져나온 세대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격변기의 아픔이 컸던만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구.경북지역에도 경북고 58회를 필두로 경북여고 출신 58년생 등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등 사회 고위층을 중심으로 선의의 경쟁과 함께 두터운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386 세대'에 비해 컴퓨터도 잘 몰라 독수리 타법이 대부분인 이들은 "가정, 회사에서도 사나운 개팔자"라고 한탄한다.
'58년 개띠'모임 회원 박인호(명도안전시스템 대표)씨는 "우린 57, 59년생과는 또다른 어려움을 겪은 세대"라며 "상대적으로 볼 때 '70년, 82년 개띠'는 복받은 세대"라고 했다.
◆잘 뭉치고 생명력 강해
4일 밤 9시 수성구 두산오거리 인근 한정식집 '설봉(雪峰)'. 58년 개띠 10명이 신년모임을 하기 위해 모였다. 애완견, 개 인형을 들고 온 이들은 '올해는 우리들의 해'라며 한바탕 왁자지껄 말잔치를 펼쳤다.
이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끈끈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사회·문화적 완충지대 역할을 잘 해낸 자부심. 때문에 개처럼 충성심도 강하고 의리도 있으며 사회적으로 할 말도 많아 '강한 입담'을 자랑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10%대의 고도성장을 이끌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나이또래이기도 하다. 대표적 베이비 붐(Baby Boom.다출산) 세대로 당시 100만 명 가량이 태어나 '58년 개띠'라는 독특한 동질적 정서를 갖고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어려움 속 낭만 즐겨
당시 유행하던 최신팝송을 모두 외고 다녔으며 어느 곳에서나 노래를 틀어놓고 즐길 줄 아는 세대였다. 이에 더해 프로레슬링 김 일의 박치기, 헝그리 복서 홍수환의 4전5기, 비실비실 배삼룡의 코미디 등에 열광했던 그들이다.
김 희 토탈케어 원장은 "청바지, 통바지, 쫄바지, 나팔바지, 단꼬바지 등 패션의 변화가 올 때도 58년 개띠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낭만을 즐길 줄 알았던 세대"라고 했다.
대구의 한 '58 개띠' 모임 총무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패션센터 최태용 이사장은 "DJ(Disk Jackey.음악박스 진행자)에 열광하고 야외나들이때 전축을 틀어놓고 디스코춤을 즐기던 낭만의 세대"라고 추켜세웠다.
한편 이들을 위한 책도 화제다. 작가 은희경의 '마이너리그'도 '58년 개띠'들의 애환과 아픔을 그려낸 소설이며 58년 개띠출신 시인 이승철과 화남출판사 방남수 대표가 출판한 '이 시대의 화두, 58 개띠에게 축배를'이란 책도 인기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 : 대구시내 한 '58년 개띠' 모임 회원들이 4일 밤 '설봉' 한정식집에 모여 애완견, 개 인형을 들고 재미있는 동작으로 새해를 다짐했다.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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