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고의 정지' 드러나

입력 2006-01-06 10:31:42

소방방재청, 주펌프 스위치 수동조작 상태 확인

12월 29일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 2지구 화재는 초기에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이번 불이 인재(人災)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더욱이 시장 외부에서 불이 먼저 발생, 안으로 번져 들어갔을 가능성도 화재 원인 조사과정에서 제기돼 방화 또는 실화에 대한 경찰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소방방재청 고위 관계자는 6일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닷새 동안 서문시장 2지구 내부 소방시설을 점검한 결과,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는 4개의 펌프 중 보조펌프 하나만 자동스위치 상태였고 2개 주펌프 스위치가 수동으로 조작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주펌프 스위치가 수동으로 놓이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조사원은 "보조펌프는 스프링클러 하단부의 물을 일정 압력으로 유지시키는 역할만 할 뿐 살수 능력이 전혀 없다"며 "보조펌프만으로는 수도꼭지에서 한두 방울 물이 흘러나오는 것에 불과, 주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화재 진화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공사 스프링클러 설비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주펌프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상가 스프링클러는 분당 2천400ℓ의 물을 뿜어내지만 보조펌프만 작동하면 최대 60ℓ가 한계. 주펌프 스위치 작동 여부에 따라 물 분사량이 4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구소방본부 관계자는 "화재 직후인 지난달 30일쯤 일부 소방 구조대원들이 화재 건물 내부로 진입, 이미 주펌프의 수동 조작 상태를 확인했었다"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초동 진화에 실패했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원단 제품이 많은 서울 동대문, 남대문 시장 일대 소방서 관계자들은 "스프링클러가 오작동해 물을 뿜으면 섬유제품에 치명타를 입히기 때문에 수동으로 조작하는 사례가 가끔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번 대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 중부경찰서 조두원 서장은 "방화관리자, 민간점검업체 등을 대상으로 관리 부실 여부를 집중조사하고 있다"고 밝혀 '무더기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문시장 2지구 불이 외부에서 발화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4일 열린우리당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입수한 정책자료에 따르면 서문시장 2지구 화재 당시 일부 경비원들은 "점포 밖 섬유제품에서 불이 나 안으로 퍼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 소방관들도 '이 같은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화재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전기누전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 전선 단락흔적을 찾는 데 주력했지만 이 같은 가능성이 사실로 드러나면 외부 실화 또는 방화에 수사력을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찰은 "국립과학연구소의 화재감식 결과가 이달 말쯤 발표될 예정"이라며 "국과수 발표 이후 수사 진행이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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