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오델로' 공연이 끝난 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답니다. 군인 복장의 한 관객이 오델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이아고에 대한 분노가 넘친 나머지 이아고 역을 맡았던 바리톤을 총으로 난사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죠. 그 뒤 둘의 묘는 나란히 안장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들의 묘비에 이런 글귀를 남겼답니다. '가장 훌륭한 배우와 가장 뜨거운 관객이 잠들다'라고요."
바리톤 오승용(35)은 그가 유학시절 들었던 이 이야기를 늘 가슴 속에 새기며 무대에 오른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재현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관객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전해준 그 배우의 연기는 그가 답습하고 싶은 길이기 때문이다.
국내 오페라 관객들에게 어쩌면 오승용은 아직 낯선 면이 없지 않다. 주로 유럽과 일본 무대에서 활동한 탓이다. 그러나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동양의 작은 거인'으로 거론하며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경북대 음대를 졸업한 오씨는 지난 1997년 18대 1의 경쟁을 뚫고 이탈리아 산타 세칠리아 음악원에 합격하면서 유학길에 올랐다. 각종 대회 상금과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하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 '마적' 등 주요 무대에 얼굴을 내비쳤다. 98년 이탈리아 제6회 바렌나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이탈리아 성악콩쿠르 대상, 비오띠 발세지아 콩쿠르 대상 등 굵직한 대회의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산세베로 베르디 극장에서 이탈리아 주역가수들과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 오승용에게 2006년은 다시 한번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예정된 수 차례의 외국 초청공연이 병술년 새해 달력을 채우고 있고, 새해부터 첫 출근한 국립오페라단 상근 단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은 오페라에 매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줄 것이다. 그가 기획하는 올 한 해도 여전히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60, 70세가 되어도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죠."
그는 오페라 배우가 목소리가 좋고, 노래만 잘한다는 찬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페라는 성악가와 달리 노래에 연기를 더해야 하는 장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무대 위에서는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배우가 작품 속에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만 맴돈다면 관객은 결코 감동하지 않을 거예요."
더욱이 바리톤은 어쩌면 누구나 낼 수 있는 '평범한 소리'이기 때문에 "더 음악적이어야 하고, 더 돋보이는 연기를 펼치지 못하면 결코 그 존재를 알릴 수 없다"는 것이 그가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하는 요인이다.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은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배역을 소화해내려는 지를 엿보게 한다. 바리톤은 아버지나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40대 이후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보편적. 때문에 유학시절부터 기른 수염이야말로 30대 중반의 그가 나이를 넘어서 때로는 중후하게, 또 때로는 인정사정 없는 나쁜 사람으로서의 강한 이미지를 남기는 훌륭한 소품이 된다.
그가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이다. 고2 때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했던 학기말 음악실기시험 시간에 힘껏 부른 '목련화'가 지금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된 것. 그때 오승용의 노래를 들은 음악교사가 자질을 알아보고 음악가의 길을 권유했고, 테너 최덕술을 소개해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오승용은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 이 같은 우연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죠. 제대로 된 옹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옹기를 깨뜨리는 장인처럼 바른 소리를 얻기 위해 혼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가 갈 길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유학시절 86세의 노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아직 내가 공부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공부해라. 그리고 먼 곳까지 날아와 공부하는 목적을 잊지 마라. 예술가의 자세를 지니고, 열의에 혼을 집어 넣어라." 그는 2월 일본오페라진흥회 초청으로 창작극 '루비치'로 일본무대에, 3월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임준희 곡 '시집가는 날'로 독일 초연 무대에 오른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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