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다/생각도 많다/아는 게 많아서 걱정이다/낄 데 안 낄 데 다 낀다/ 일간지 운세풀이엔 꼭 나온다/세상은 이들에게 관심이 많은가 보다/그러나 아무리 난리 쳐도/외로움을 제일 잘 타는/사주(四柱)다'. 시인 김낙필의 '58년 개띠'라는 시다.
병술년 개띠 해-음력으로 따지면 아직 을유년 닭띠 해이나-를 맞아 1958년생들이 다시 이목을 끌고 있다. 신문'방송 등 언론도 58년 개띠들을 집중 조명했다. 평가를 종합하면 한마디로 요약된다. '극성스럽다'다. 그렇다. 58년 개띠는 어디서나 튀고 끼리끼리 잘 뭉친다. 그래서인지 '58년 개띠'란 제목의 유행가(차용준), 시집(서정홍)을 비롯해 58년 개띠 4인의 인생유전을 그린 소설 '마이너리그'(은희경)까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또 1월 말에는 예술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운동가 등 58년 개띠 20여 명이 필자로 참여한 '이 시대의 화두, 58개띠에게 축배를'이란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58년 개띠의 정체성을 스스로 묻는 책이다.
58년 개띠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얼까. 58년 개띠끼리만 통하는 정서가 있다고 한다. 그 기본 정서는 베이비붐의 정점 세대로서 출생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앞으로도 계속될 극심한 경쟁이다. 필자가 졸업한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2부제 수업에도 교실이 모자라 3부제 수업을 했다. 한 학급의 학생 수도 무려 90명으로 15학급의 졸업 동기생이 1천300여 명이나 된다. 자연 치열한 입시 전쟁과 취업 경쟁을 치러야 했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으로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후세대의 천덕꾸러기가 될 가능성도 적잖다. 무덤에 갈 때까지 경쟁이란 의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불행한 세대인 것이다.
그래도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이 연령대에 58년 개띠만 있는 게 아니다.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도 엄연히 존재한다. 59년 돼지띠들은 불과 한 살 차이인 58년 개띠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어른스럽다'고 얘기한다. 구세대의 막내와 신세대의 맏이인 낀 세대로서 '눈칫밥'을 먹다 보니 자연 어른스러워졌을 게다. 이와 함께 사상 최고의 입학난과 취업난을 뚫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어디서나 튀었고 그래서 주목받는 게 아닐까. 어쩌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유년 시절 '콩나물 교실'의 경험이 경쟁에서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심었고, 경쟁 의식과 함께 강한 유대감이 생겨났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러나 58년 개띠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주류'가 돼보지 못했다. 선배들의 권위에 눌리고 후배들의 기세에 치인 '낀 세대'인 탓이다. 민주화를 위해 거세게 저항했으나 민주화 실험의 성공 세대인 386세대와 달리 실패와 좌절의 기억을 더 많이 가졌다. 게다가 너무나 치열한 과잉 통과의례를 거치는 바람에 사회적 관심사에 눈을 돌릴 여유를 갖지 못했다. 지금도 시국 얘기보다는 앞으로 살 일을 더 걱정한다.
하지만 58년 개띠들도 변해야 한다. 조만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다. 권위로 누르던 선배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터에 386세대에 떠밀리기만 해서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정작 끼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 무심했는지는 모르나 그 무관심을 접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란한 구호만 외치는 386세대처럼 앞서서 걸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노자는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들 뒤에서 걸어라"고 했다. 이제 나약함을 노출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벗어나 후원과 격려에 치중함이 어떤가.
58년 개띠가 특별하다는 평가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부당한 아첨'일 수 있다. 특별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386세대처럼 사회 발전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58년 개띠들도 늙는다. 따라서 조만간 일어나지 않은 일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너무 늦다. '살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라'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생이 너무도 중요해서 진지한 태도를 취할 수 없다는 사람만 빼고….
曺永昌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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